썰매 끄는 알라스카 개

 

수년 전에 알래스카에 갈 일이 있었다. 기독실업인 북미주총회에도 참석하고 All Tribe Church의 전임 목사인 J. Wilson 목사와 만나기 위해서였다. 모든 일정을 다 마치고 돌아오기 위해 공항에 가기 전 몇 시간 여유가 있기에 근처에 있는 기념품 가게에 들러서 가족과 직원들에게 줄 선물 몇 가지를 골랐다. 당시 매니저로 훈련 받고 있던 직원에게 줄 커피 컵을 찾는데 저 구석에서 먼지를 잔뜩 뒤집어쓰고 있는 특이한 커피 컵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아마도 안 팔려서 반값에 세일이었기 때문에 내 눈에 띄었는지도 모른다.) 그 컵에는 썰매 끄는 알래스카 허스키 개가 그려져 있고 밑에 다음과 같은 글이 새겨져 있었다. ‘알래스카에서는 당신이 제일 앞서가는 Lead Dog이 아닐 경우 풍경은 절대 변하지 않습니다.’

 

당시에 ‘너희들 분야에서 Lead Dog이 안되거나 못 되려면 하지도 말아라’ 라고 직원들에게 가르치고 나 자신도 Lead Dog이 되려고 많은 책을 읽고 또 적지 않은 돈을 들여 세미나에도 참석하고 여러 방면으로 몸부림치던 때였다. 그리고 그때 나는, Lead Dog은 항상 앞에서 뛰면서 좌우를 결정만 하면 되고 Fellow Dog들이 알아서 따라오는 것으로 단순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거저 먹기 혹은 누워서 떡 먹기 식의 생각이었다.

 

사실 Lead Dog이 되려면 필요에 따라서는 다른 개들과 피투성이가 되는 싸움질도 마다 않고 해야 되고 제일 열심으로 빨리 뛰며 그리고 순발력과 판단력이 뚜렷해 앞을 내다볼 줄 알고, 자신을 희생하는 자세와 모험심 등이 있어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당시 수없이 많이 쏟아져 나오던 리더십에 관한 책들에서도 비슷비슷한 내용들을 말하고 있었다. 그런데 한가지 빠진 것이 있었다. 아니면 내가 우둔해서 빠뜨렸거나, 혹은 내 나름대로의 스타일에 충실하다 보니 마음에 안 맞는 내용으로 치부하고 슬쩍 지나쳤나 보다. 돌이켜보면 후자인 것 같다.

 

빠뜨린 내용 아니 내가 싫어서 간과했던 내용은 무엇인가?

Lead Dog이 되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MUSHER - 썰매를 작동하는 자의 말을 얼마나 정확히 알아듣고 따르느냐 하는 점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얼마만큼 순종하느냐에 따라서 Lead Dog이 만들어지고 결정이 되는 것을 나는 몰랐었다. 당시 나는 혼자 잘나서 빨리 뛰고 열심히 뛰고 남들보다 이론도 좋아서 말싸움에서 상대를 항시 누르면 되는 줄로 알고 살았다. 거기다 성실과 근면이란 멋있는 단어를 방패로 앞세우니 당할 자가 없었다. 성경 지식 또한 남에게 뒤지기 싫어서 기독교 교리와 그 외에 쓸데없는 세계관 등의 지식만을 의지하다 보니 문득 기억나는 말이 있다. ‘예수쟁이들에게 말싸움은 이길 수 없다’ 라고 내뱉던 어떤 이의 말. 그 말의 발단은 바리새인처럼 순종에는 관심이 없고 다만 나 잘났다고 사는 나 같은 기독교인에서 기인했을 것이다.

 

내 사업장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매니저로 훈련시키던 직원이 최고의 실력으로, 진심으로 그리고 상당히 열심히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을 하였건만 나도 그도 모르는 사이에 사장인 나와의 대화가 잘 이루어지질 않았다. 또 나 자신도 무의식 중에 순종을 요구하면서도 그에게 확실한 지침을 주지 못했으니 당연히 거리가 멀어져 갔고 환경이 바뀐 것을 이유 삼아 그는 다른 직장으로 옮겨갔다. 이 무능한 사장이 조금만 더 잘 했으면 능력있는 직원을 잘 길렀을 것을 정말 후회가 막심하다.

 

Musher가 개 한 마리를 길러 내려면 수 년이 걸린다고 한다. 때에 따라서는 매도 맞고 야단도 수 없이 듣고 피눈물 나는 과정을 거쳐 순종이 몸에 밴 Lead Dog이야말로 정말 한 식구로 동고 동락하며 또한 주인에게는 둘도 없는 재산이고 친구가 된다.

 

이 글을 쓰면서 다시 한번 느낀다. 이론은 누구보다 잘 알면서 왜 실천에 못 옮기느냐고? 

나 자신에게 채찍질한다 - 앞서 가는 것만 좋아할 것이 아니고 순종부터 하자고.

하나님 저도 Lead Dog이 되고 싶어요. 하나님 말씀 잘 듣고 순종할게요.

 

알래스카의 경치와 풍경은 너무나 멋있다. 하얗게 덮인 눈과 뒤로 떨어지기 직전의 태양, 그리고 그 밑에 깔려있는 산림. 정말 하나님이 만드신 이 세상 중에 가장 무게 있고 장엄하며 순결한 이 풍경을 오직 Lead Dog만이 즐길 수 있다. 그 뒤에서 썰매 끄는 개들은 어디를 가든지 풍경이 전혀 바뀌지 않고 앞의 개 뒤만 보고 가게 된다.

 

진심으로 기도 한다.

전능하신 하나님!  정신없이 내 방법대로만 뛸 줄 아는 천방지축 강아지인 저를 가르치시고 인도하시며 감동시키시어 그리고 정히 필요하시다면 두드려 패서라도 Lead Dog으로 길러 주세요. 주님이 명하는 것 잘 듣고 열심히 뛰는 개가 되기를 원합니다.

순종하는 이경석이 되게 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