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개 차우차우

 

중국을 대표하는 개는 ‘차우차우’ 라 할 수 있다.  이 개는 사냥개로써 몸이 상당히 크고 성격면에서 전혀 급하지 않고 차분하며 생김이 나이에 비해서 많이 들어 보이며 뚝심과 보수적인 냄새를 풍긴다.  우리 집에서 잠시 기르다가 애들이 너무 어리기에 다른 집에 보낸 적이 있다.  혀 빛깔이 검기에 특이하고, 몸집은 거대 하였으나 내 막내딸 Happi에게 한번 코를 심하게 물린 경험이 있은 후부터는 누가 Boss인가를 확실히 알고 굽힐 줄 아는 개였다.  이러한 중국산 개와 중국인들의 비슷한 점을 얼마 전에 경험했다.

 

지난 몇 개월동안 2004년 중반에 북가주 에서 일어난 사건 중 전국 신문지상과 텔레비젼 화면 그리고 라디오 전파를 독점한 일이 있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4000쌍 정도의 결혼식이 벌어졌는데 희귀한 일은 남녀간의 결혼이 아니고 남자와 남자 그리고 여자와 여자 사이에서 벌어지는 동성 결혼식이였기에 관심 거리가 된 것이다.  이 동성연애라는 것이 우리 샌프란시스코에서만 제한 된 것도 아니고 또한 요즘 세대에만 극한된 것도 전혀 아니다. 구약 성경을 읽어 보면 아브라함의 조카 롯이 거하던 소돔과 고모라 지방(Sodom & Gomorrah)에서도 동성연애가 성행했고 또 사사기 시대에도 동성연애의 관계를 확실하게 하나님이 싫어하고 저주하는 것이 확실하게 기록되어 있다. 동성애의 비정상적인 행위를 Sodomize라 하는 단어가 여기서 시작된 것이다.

 

이 동성 연애자들이 자신들끼리 감추어진 부끄러운 일들을 세상 앞에 내놓고 주류사회로 진출하는 첫 걸음으로 정식 결혼에 도전을 한 것이다.  이 사건이 벌어지면서 숴월츠네이거 주지사도 들고 일어나서 결혼증명서 발부를 중지시키고 또 부쉬 대통령까지 동원이 돼서 미 헌장을 바꾸자고 난리가 벌어졌다.   이러한 와중에 우리 한인 기독교는 물론 미국 기독교인과 교회모두들이 뒷 전에서 잡담 식의 반대 토론과 기독 신문지상을 통해서 서로 끼리끼리 찬반론을 나누고 있었다.   이렇게 무력한 기독교와 교인들의 의견은 좌익 미디아에 별로 관심도 받지 못하고 있는 상태 일 때 샌프란시스코 최대의 보수적 대모가 벌어졌다.  북가주는 물론 전 미국의 신문과 방송에 전체적으로 보도 된 동성결혼 부결운동은 주최, 주관, 후원 그리고 참석자 대부분이 중국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중국인의 대부분은 중국 기독교인들이었다.

 

한편으로는 한국 사람들이 꿈도 못 꾸는 것을 화끈하게 끌어가는 중국 기독교인들이 부럽기도 하고, 존경스럽게 까지 느껴지는 이벤트였다.   돈만 잘 버는 돈벌레 중국인의 이미지를 완전히 바꾸어 버린 이 사건.  능구렁이 같이 조용히 일을 저지른 이들 그리고 상상도 못할 정도의 보수적인 중국기독 교인들에게 찬사를 보낸다.

 

한국에서 살던 화교들이 얼마나 멸시를 받으며 불공평하게 살았나 어린 나이에도 기억이 난다.  정부 차원에서도 그들에게 정당한 이유 없이 차별대우를 하고 어른들은 개개인적으로 그들을 말과 행동으로써 격하 시키는 것을 목격했다.  진돗개 같은 우리 한국사람틈 속에서 살자니 참 힘들었을 것이다. 이 넓은 미국땅에 와서도 중국인들은 흑인들이 당한 차별대우의 이상을 감당하며 정말 ‘차우차우’ 개의 모양으로 조용히 침착하게 한사람 한사람, 한가정 한가정, 한교회 한교회 이 나라에 자리를 굳혔다.

 

중국인의 재력은 따로 예를 들을 필요 없을 정도로 유명하다.  그들의 정치력도 이제는 어느 누구도 손을 못 댄다.  필자가 결혼 전까지 거주하던 쿠퍼티노 시의 시장은 현재 중국인이다.  이 동네의 모든 정치와 재력은 중국사람들이 지배한다.

 

교계에서도 중국인을 무시 못한다.  우선 우리 침례교단의 특징인 협동선교에 가장 두드러지게 열심히 참가 하는 교회는 중국 교회이다.   이와 반면에 숫자로는 2배 이상 되는 우리 한국교회들의 협동선교 헌금은 숫자의 절반도 안 되는 중국교회의 전체헌금에 못 미친다.  진돗개와 ‘차우차우’의 단면을 비교하는 것 같다.

 

남침례교 가주 청소년 성경 암송대회와 청소년 웅변대회의 결과를 보면 중국 기독교인의 저력을 볼 수 있다. 지난 2-30년간의 대회에서 한인 교회에서 3번의 챔피언이 나오고 미국교회에서 1번, 나머지는 모두 중국 교회들이 차지했다. 그들의 인해전술 아니 차우차우 식의 교육방법과 끈질김에 다시 한번 손든다.

 

아무리 한국이 기독교인이 많다 하고 요즘은 선교사를 중국으로 보낸다 하여도 사실 역사적으로 볼 때 한글 성경이 중국 성경을 재 번역한 것부터 시작해서 한인 교계의 많은 목사님들이 중국에서 신학교를 나온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전체적 교인의 숫자도 지금은 한국이 많다고는 하나 한국의 기독교는 이제 더 이상 숫자가 늘지는 못하는 형편이고 오히려 현저히 줄어드는 현상이다.  어느 중국교인이 들려주는 말에 의하면 중국에는 하루에 70,000명의 새로운 기독교인이 태어나고 있다고 한다.  다시 말해서 수년 안에 중국은 세계의 대표적 기독교나라가 될 수 있는 저력이 있는 것이다.

 

필자가 속해있는 CBMC라는 선교단체의 국제총회를 중국에서 2005년에 개최 한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진돗개 스타일의 중국선교도 이제는 바뀔 때가 된것 같다. 무조건 중국이 아직은 미개국이라는 스타일의 비즈니스도 이제는 바뀌었다.  기독교도 이것에 비례해서 한발 앞서가는 선교를 펼칠 때다. 이 기회는 몇 년 후에는 없어질 기회라는 것을 기억하면서.

 

중국의 저력에 찬사를 보내면서 한편으로는 한국은 항상 중국을 조심해야 한다는 노파심이 든다.  역사를 아무리 들추어봐도 중국은 한국을 동등 파트너로 본적이 없다. 언젠가는 또다시 한국이 중국의 속국이 되리라고 그들은 절대로 믿고 있기 때문에 항상 불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