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쁜 강아지

 

멕시코 단기 선교여행 오리엔테이션에서 항상 강아지를 만지지 말고 가능하면 아예 멀리 하라고.  합리적인 설명을 하기에 나름대로 마음 속 깊이 새겨 들었다.

 

도착하고 다음 날 처음으로 우리가 집을 지어줄 가족을 만나러 갔다.   아버지, 엄마, 아들 둘 그리고 강아지 3마리.  가족들과 대화도 몇 마디 못하고 (내가 스페니쉬 실력 정도만큼 그 들은 영어를 했다) 손짓, 발짓으로 인사를 나누고 “주님의 이름으로 우리가 당신들의 집을 지을 것이고, 이것이 계기가 되어서 온 가족이 예수를 알게 되었으면 좋겠다고”.  겨우 통성명하고 일을 시작했다. 

 

일을 시작한지 2시간 만에 벽이 하나가 올라갔다. 그 후 1시간 반 후 두 번째 벽이 올라갔다.   힘도 들고 쉴 겸 작년에 집을 지어준 집에 걸어서 가 보았다.  식구들보다 먼저 그 집 강아지가 나를 반겨준다.  강아지 짖는 소리를 듣고 아이들이 나오는데 나를 기억하고는 아무 스스럼 없이 안긴다. 눈물이 핑 돈다.

 

어느 짐승을 막론하고 어린것들은 예쁘다.  그 중 특히 강아지들은 어떤 종자에 상관없이, 하다 못해 똥개의 강아지도 너무너무 예쁘다.  특히 아직 엄마의 젖을 떼지 않은 강아지의 냄새는 물어주고 싶을 정도로 친근감이 간다.  멕시코의 강아지가 아무리 더럽고, 병균이 많으니 근처에도 가지 말라고 귀가 따가울 정도로 들었으면 어찌하겠는가!  달려와서 안기는데.  예쁜거야 물론이고.

 

예수가 천당에서 하나님의 명을 띠고 세상에 태어나기로 결정한 후에 아마도 천사들이 모여서 예수에게 오리엔테이션을 했을 것이다.  그 중에 우리 인간에 대한 과목에서 인간들이 얼마나 더럽고, 미운짓도 많이 하고 또 마음속에 많은 전염병을 가지고 살기에 절대 만지지도 말고 가능하면 근처에도 가지 말라고.   당연히 그들의 자식들인 어린아이들도 포함해서, 모든 인간들은 죄인이기에 멀리 하라고 귀가 따가울 정도로 천사들이 예수님에게 말했을 것이다.

 

아무리 들었으면 무엇하겠는가. 예수도 죄성에 푹 빠져서 사는 인간들은 별 볼일이 없었지만 어린 아이들에게는 두 손을 드셨다.  성경에도 확실히 써있다 ‘애들이 오는 것을 막지 말라고’.  하기사 개를 포함한 모든 짐승들도 어린것은 예쁜데 인간은 당연한 것이 아닐까?  그런데 여기에 예수는 한마디 더 붙이셨다.  누구든지 아이가 되어야만 하늘나라를 볼 수 있다고. 시간이 지나고, 나도 애들을 셋이나 기르면서 이 성경구절이 재정리가 되는 듯 싶다.  애들이 어른과 다른 것을 조금 나열해 보자. 당연히 천진난만 하고, 거짓이 적고, 걱정이 적고, 근심이 없고, 악심도 미움도 적고, 단순하고 등 정말 많은 차이가 있음을 새삼 발견했다.  또한 애들은 무엇을 믿는 것에 대한 조건이 없었다.  또한 쓸데 없이 따지는 것도 없었다.

 

사실 강아지도 아무리 사나운 종자를 포함해서 오라고 부르면 쫄랑쫄랑 잘 따라온다. 과연 예수가 우리 인간이 강아지처럼, 아이들처럼 쉽게 누구를 좇아가게 하기 위해서 그렇게 말씀 하신 것은 아닌 것 같다.  오히려 이 세상에서 형편 없이 힘들게 눈치 속에서 매일 매일 생활하는 우리에게 좀 쉽게 살게 하려고 말씀하신 것이다.

 

살다보면 ‘요즘 세상에 믿을 놈 하나 없다’ 라는 말을 얼마나 많이 듣나.  정말 너무나도 죄성이 넘치는 세상에서 서로 속이고 속는 것이 몸에 배었기에 속이는 그 자체가 정상화 되어있고 또 속이지 않을 때가 오히려 비정상이 되어있는 세상이다.  예수쟁이가 이 세상에는 한 명도 없다는 말인가?  최소한 우리 예수쟁이들 만이라도 정직하게, 솔직하게, 근심 없이, 악심 없이, 미움 없이 살았다면 이러한 말들이 나올 수 없었을텐데. 다시 말해서 우리 예수쟁이들도 세상 사람들과 대단한 차이 없이 속이고 속고 산다는 말이다.  이러한 현실이 오늘날에만 있지는 않았을 것이고 예수님 시대에도 커다란 차이 없이 좋지 않은 세상이였을 것이다.

 

이처럼 좋지 않은 세상풍조를 바꾸려고 우리 인간역사를 볼 때 무던히 노력한 기록들이 있다.  철학을 통해, 종교를 통해 또 신학을 통해 여러 방면으로 노력을 하나 별 효력이 없는 것은 우리가 자백해야 하겠다.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한 구약을 통해서도 얼마나 많은 교훈을 주셨던가. 그것이 모자라서 여러 명을 선지자를 보내시고 때에 따라서 벌도 주시고 등등   그러나 우리 인간들은 이러한 방법과 가르침을 이해 안 한 것도 많지만 사실 이해를 못 한 것도 부인 할 수 없었던 점도 인정 해야 한다.   근래에 와서 대중이 성경을 읽지, 불가 1세기 전만 하더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접할 기회는 별로 없었다.  그 말씀을 연구하여 제대로 이해하려는 노력은 ‘하늘에 별따기’ 정도로 힘이 들었다.

 

이런 힘들고 복잡한 인생사를 제일 쉽고 그리고 세계적으로 지역에 상관없이, 빈부의 차이도 껑충 뛰어넘는 가르침이 “어린아이 같이….” 이다.  이 가르침보다 따로 설명할 필요 조차 없을 정도로 누구나 쉽게 이해되고 확실한 가르침이 어디 있을까. 이 가르침은 우리 기독교인들 사이에서 종교적 적용뿐만 아니고 온 세계적으로 부패 해가는 도덕과 사회생활 그리고 모든 얽히고 얽힌 국가간의 관계, 복잡한 인간과 인간 사이의 모든 관계에 정확하게 적용 될 수 있는 것이다.

 

내 사업체에서도 적용해 봤다.  손님을 대할 때 어린아이 대하듯 복잡하지 않고 단순하게 설명을 해주면 이해도 빠르다.  손님이 무엇을 요구하든 어린아이 입장에서 들으니 그 들의 요구도 쉽게 이해가 된다.   내 직원들을 대할 때 어린아이 입장에서 대해주고 또 어린아이 식으로 대화를 할 때 쉽게 훨씬 정확하게 의사 전달이 된다.

 

예수님이 왜 어린 아이들을 좋아하고, 우리 어른들에게 어린아이들처럼 되라는 가르치심을 이제서야 좀 이해가 되는 것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