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 버릇

 

“개 버릇”이란 단어에는 나쁜 버릇이 암시되어있다.

“개”글자가 앞에 있다 보니 개들이 주로 하는 것이 무엇인가?  당연히 좋지 않은 것을 표현하는 것이다.  단 “버릇”이란 단어는 한번 정도는 생각을 해 볼만 한 단어이다. 

사전에 Habit을 찾아보면 습성, 습관, 습관적 행위 (약물, 특히 마약의) 상용 등등 Negative 를 Imply 한다.

 

이 단어를 조금 Positive 한 면에서 본다면 우리 2세 청소년 사역에 조금 도움이 될 수있을 수 있다.  성경에서 좋은 버릇에 대한 구절을 찾는다면 당연히 예수님의 버릇이 있다.  “새벽에 버릇대로 기도하러 산에” 오르던 일 – 이것이 과연 우리 청소년과 무슨 관련이 있는가?

 

요즘 청소년들에게 왜 주일날이면 그리고 금요일 저녁에 교회에 오느냐? 고 질문을 할 때 제대로 대답할 수 있는 학생이 몇 명이나 될까?  사실 대부분 학생들은 그냥 부모들에게 반강제적으로 끌려서 나온 경우가 제일 많고 다음으로 아무 이유 없이 그냥 평생 나오는 교회이니까 생각 없이 계획 없이 나온 경우이다.  가뭄에 콩 나듯이 확실한 이유가 있어서 나오는 학생이 가끔 몇몇 있기에 우리 청소년 사역자들이 위로를 받고 힘을 얻는다 - 단 이것은 예외 경우이다. 

 

다시 대부분의 학생들로 돌아가자.  왜 특별한 이유와 동기 그리고 목적 없이 청소년들이 교회에 오게 하는 버릇이 들게 만드나?(그것도 억지로).  완전한 신학적 뒷받침은 없으나 20여 년간 교회에서 청소년들과 함께 뛰다보니 나름대로 지은 결론은 “이 때에 애들이 화끈한 결정 / 변화가 없어도 자라나는 과정상 문제 안 일으키고, 정기적으로 교회에 와서 예배 드리고 (졸면서라도), 교회 친구와 어울리고 (말썽도 종종 부리면서) 이렇게 교회 주위에서 버릇 드린 청소년들은 때만 차면 대부분 다시 교회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많은 분들이 이해는 될지 모르나, 필자의 경험에 의하면 사실 이것보다 더 중요한 버릇(Culture)은 없는 것 같다 – 학교성적과 생활을 포함해서.

 

지난 15년간 교회에서 중고등부 학생들을 대상으로 성경암송대회 (검훈련)과 웅변대회를 주관하여 왔다.  장장 9년에 걸친 이 과정을 제대로 이해도 못하면서 억지로 라도 걸친 학생들의 대부분은 지금도 교회생활을 정기적으로 하고 있다.  한 발짝 더 나가서 다음 세대의 지도자들은 대부분이 이 과정을 거친 학생들이다.  필자가 참석하고 있는 KBC of SJ(산호제 한인 침례교회)의 2세 Leadership은 모두 다 이 과정의 열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 정도로 버릇 / 교회에 참석하는 버릇 / 특히 성경을 가까이 하는 버릇은 중요한 것이다.

 

사실 보수적 / 전통적 유대인들 간에 청소년들이 외우지 못하면 예배에도 참석하지 못하게 하는, 쉐마라 불리는 신명기 6장 4-9절을 보면 청소년들이 자진해서 하게 하는 것은 전혀 없고 부모들에게 강요성까지 띠게 하며 자녀 교육의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아이들에게 하나님을 공경하게 버릇을 들게 하라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외우는 버릇을 들게 하라고.  이러한 좋은 버릇을 들게 하면 이것이 바로 우리 아이들이 성공하게 가르치는 것이다.   사실 Habit이란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재미있는 풀이가 있다. “특별한 계급, 신분, 직업의 복장” 혹은 “특별한 경우에 입는 옷 – 수도복” 등도 버릇(Habit)의 정의이다.

 

다시 버릇으로 돌아가자.   버릇을 쉽게 설명하자면 “무의식 중에 행하는…” 이 나에게는 가장 적합한 정의인 것 같다.  즉 청소년에게 가르친 버릇이 이 들이 살아가면서 가장 힘들고 앞이 막혀 캄캄할 때 무의식 중에 무릎을 꿇고 기도를 할 수 있고, 근처의 교회에 가서 상담을 받을 수 있으며, 주위의 도움이 될 만한 친구가 기억이 나서  연락을 보내서 조언을 들을 수 있는 등등 이렇게 좋은 버릇이 배워지지 않은 상황에서의 청소년은 진공상태의 무버릇이 아니고 언젠가는 “개버릇”으로 채워지는 것이다.  예를 들면 힘들고 앞이 막힐 때 우선 술로 자신을 달래면서 문제를 잊으려고 노력한다.  다음 단계는 마약으로 넘어가고 점점 악화되어서 자살이란 극치의 결정까지 이르게 될 수 있다.   설상 이 정도로 끝까지는 안 간다 하여도 나쁜 버릇의 (개버릇) 결과는 기독교를 떠난 관점에서도 과히 장려할 수 없는 것이 당연한 것과 같이 좋은 버릇은 누구나가 환영하는 것이다.

 

이론적으로는 너무나도 좋은 이것을 실천에 옮기려면 엄청난 시간이 소요된다.  그렇기에 아직도 이 기독교문화가 우리 사회에 완전히 뿌리를 내리지 못한 이유도 여기에 있는 것이다. 거기에다 요즘 많은 신학자들이 외치는 Post Modernism 관점에서 더욱 더 힘든 것이다.

 

나쁜 버릇 (개버릇)은 배우기가 너무 쉽다.  사회가 다 엉망이고 또 우리 인간 하나 하나가 다 죄성에 빠져 살기에 아무 노력 없이도 나쁜 버릇은 저절로 배워진다.  반면에 좋은 버릇을 배우려며는 강제적 노력이 있어야 되고 때에 따라서는 희생적 노력이 필요할 때도 있기에 그만큼 아픔이 따르며 시간과 많은 경우에 돈의 투자가 요구된다. 

 

우리 1세들이 항상 들추는 “2세를 위해서 미국에 왔어요”를 실천에 옮길 때가 왔나 보다. 좋은 Habit을 갖도록 습관을 들여서, 좋은 Habit을 얻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