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처럼 벌어서 정승처럼

 

나의 어머니는 고등교육을 받은 분이 아니다. 그러나 그 분의 입에서 나오는 지혜는 따를 사람이 없다.(아내의 말로는 한 분 계시다 - 한글도 못 읽으시는 외할머니) 그 분이 항상 입에 달고 사시는 말씀이 있다. - ‘개처럼 벌어서 정승처럼 써라.’  나름대로 기독교 세계관을 배우고 실천한답시고 날뛰는 나를 한마디로 겸손하게 하시는 어머니의 지혜.

 

미국에 와서 부모님과 같이 밤중에 청소 일을 한 기억이 있다. 나름대로 놀고도 싶고 창피하기도 하고 한국에서는 주위에서 상당히 존경 받던 부모님이 왜 이렇게 되었나 속으로 반항직전까지 간 적이 몇 번 있었다. 아버님께서 돌아가신 후 어머님이 혼자서 가장으로서 일을 하실 때도 일하는 시간을 밤으로 옮겨 일하셨다 - 몇 푼 더 준다고.  냅킨을 한나절 앉아서 가위로 반씩 잘라서 쓰는 것은 지금도 변함이 없으시고 일회용 컵과 접시, 대나무 젓가락을 닦아서 쓰는 습관을 따라갈 사람이 없다. 어머니의 재활용 아이디어와 아껴 쓰는 방법들을 잘 정리한다면 Martha Stewart가 제자 삼아 달라고 할 정도다.

 

그런데 이 분이 많지도 않은 이 돈을 이렇게 모아서 어디다 쓰시는 지가 더욱더 젊은 세대인 우리를 겸손하게 한다. 아내가 작년에 아프리카에 간다 하니까 어머니께서는 바로 일에 들어가시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이지만 주위 사람들에게 ‘내 며느리 선교여행가는 데 도움 주려고’.  항상 입버릇처럼 하시던 말씀, ‘개처럼 벌어서 정승처럼 쓴다’를 몸소 실천하시는 어머님. 당신의 며느리가 신학석사 공부를 하고 전도사라는 직함이 있어도 항상 성경말씀을 실천하며 사는데 있어서는 자신만만하신 어머님이기에 우리가 아무 말도 못하고 늘 어머님의 조언과 힐책도 감사하게 받는다. 올해 아내의 두 번째 아프리카 선교여행에도 어머님께서 큰돈을 주시었다. 그리고 아내가 떠난 후 며칠 만에 밑반찬을(아주 무지무지하게 짠 밑반찬)을 만들어서 갖다 주시며 내게 말씀하시길 - “나가서 사먹지 말고 집에서 애들 잘 먹여.” 이 말씀을 듣고는 한달 동안 한번도 외식을 못했다.

 

수영을 못할 때는 땅 짚고 헤엄치기 식으로 물장구 치고 놀기 좋은 한국의 공중 목욕탕이 아주 제격이었다. 물이 깊은 수영장이나 강가 혹은 바다는 그저 무섭고 또 옛 어른들이 가지 말라고 신신당부하던 기억이 난다. 잘하지는 못해도 수영을 조금 하기에 목욕탕에서 수영하는 것보다는 수영장, 호수, 저수지, 강가 또는 바다에서 하는 것이 훨씬 재미있다.

 

돈이라는 것을 그저 먹고 사는 데에 필요한 것 정도로 생각할 때는 물과 같이 꼭 필요한 것 이외에는 그저 내가 빠질 수 있는 위험한 것으로만 생각했다. 성경에서도 ‘부자가 천국 들어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들어가는 것’으로 비유 했다. 그래서 돈을 많이 벌면 내가 잘못 나가는 줄로 생각하고 돈을 무서워하며 살았다. 나이가 들면서 조금씩이나마 돈의 가치를 알게 되고 또 수영을 배우듯이 돈을 버는 법, 쓰는 법을 배우다 보니 제대로 쓰는 법을 배우면 돈이라는 것은 벌을 수 있다면 많이 버는 것이 좋은 것 같다. 왜냐하면 있어야 만이 제대로 쓸 수가 있기 때문이고 없으면서도 쓸려는 사람은 몇몇 경우를 제외하고는 순리를 어기는 불법행위이기 때문이다.

 

‘개처럼 벌어.....’ 이 옛말이 ‘막무가내로’, ‘사납게’ 혹은 ‘더럽게’ 등으로 해석할 수도 있지만 나름대로 수정한다면 ‘개처럼’에서 개는 ‘충실한’ 그리고 ‘열심히’ 등으로 해석을 하고 싶다. 이렇게 해석을 하면 전체적인 문장의 의미가 더욱 실감이 난다.

 

‘.... 정승처럼 써라’ - 사실 이것이 잘 되어야만 ‘개처럼 벌어서’가 의미가 사는 것이다. 간혹 좋지 않고 정당치 않은 방법으로 번 돈을 속죄하는 차원에서 자선 사업에도 관심을 갖고 헌금도 하며 특히 정치가에게 많이 쓴다. 이런 식의 돈 씀씀이는 정승처럼 쓰는 것이 아니고 개처럼 써서 또한 자기가 한바탕 더 벌려고 하는 음모일 뿐이다. 역사적으로도 정당히 번 돈을 제대로 쓰는 집안은 몇 세대를 지내도 칭송 받는 집안이고 반대로 집안을 망조 들게 하려면 부당한 방법으로 벌고 자기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쓴다면 다음 세대에 나타나게 된다. 액수에 상관없이 정당하게 열심히 번 돈을 의미 있는 곳에 헌신적으로 쓸 때 돈은 목마른 사람의 목을 축여주는 시원한 생명수가 될 수 있고, 많은 돈을 제대로 쓸 때 이것은 하늘에서 내리는 단비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나 자신도 이 글을 쓰면서 다시 한번 느낀다. ‘.... 벌어서 .... 써라.’ 이 차례를 어길 때는 상당한 고충을 겪게 된다. ‘쓰고 벌어라’ 라고 가르치는 이 사회에서 특히 신용카드 선전에 깔려있는 메시지는 ‘개처럼 쓰고 정승처럼 벌어서 우리의 이자를 평생 갚아라’인 것 같다.

 

다시 한번 어머니의 지혜에 감탄한다. 우리 어머니가 남자로 태어나서 기회가 주어졌더라면 Warren Buffett이 경쟁자가 있었을 것을.......

 

나는 지금부터라도 개처럼 열심히 그리고 충실히 벌어야겠다. 그리고 정승처럼 잘 써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