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 묻은 개

 

성경에도 확실하게 써있듯이 “남의 눈에 들어있는 티끌을 보기 전에 내 눈에 들어있는 대들보를 먼저보라”  버릴 것 하나 없는 좋은 말씀이다.   기독교인 (교회 다니는 사람)은 상당히 많으나 기독교 문화가 생소한 한국식으로 같은 계열의 속담/격언이 있다  -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를 ...”.  별 생각 없이 들을 때는 비슷한 말 같으나 자세히 연구해보면 상당한 차이가 있고 한발 더 나아가서는 한국의 기독교문화와 나라발전에 상당히 다른 결과를 초래하는 문구가 된다.

 

기독교적 잠언은 기능(Function)면에서 볼 때 정말로 남의 약점 혹은 장애를 이야기 하기 전에 나의 눈에 기능을 회복하라고.  나의 시력을 방해하거나 말소하는 대들보가 있을 때 남의 약점보다는 내 약점과 장애가 더욱 더 크기에 내 자신의 생활도 전혀 못하게 된다. 이런 때는 정말 내 상태를 다시 한번 돌이켜 보아야 하고 또 필요에 따라서는 자중도 해야 한다.

 

그러나 한국적 격언은 기능(Function) 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겉치레의 다름 뿐인 것이다.  겨가 묻었건 똥이 묻었건 둘이 다 닦이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심하게 이야기해서 체면문화가 지배하는 한국문화에는 똥과 겨는 구분이 될지 몰라도 실질적 (Pragmatic)면 혹은 기독교적 관점에서는 별 상관이 없는 보기에는 하자 인 것 같은 똥 묻은 개도 결과적으로 겨 묻은 개와 동등한 처지인 것이다. 

 

이 똥 묻은 개를 아무 말도 못하게 하게 되면 우선 이 똥 묻은 개를 성장 시킬 기회를 잃게 되고 또한 그의 자아의식(Self Image)까지 망가지게 된다. 또한 당사자에게 커다란 손상을 입히는 것은 물론이고 한발 더 나아가 이 똥 묻은 개에게서 배울 수 있는 실패의 경험담과 그것을 바탕으로 습득한 좋은 대책을 배우지 못하기에 교회와 사회는 물론 또한 나라에 까지 손실을 초래하는 결과가 된다.

 

사업체의 예를 들어보자. 지난20여 년을 나름대로 꾸려 나온 나에게 진짜 도움을 주신 분들은 멋있는 사업을 성공적으로 많은 재산을 축척한 사람들이 아니다.  오히려 회사를 말아먹는 쓰디쓴 경험이 있는 분이거나 현재 많은 실패와 실수를 수 없이 되풀이 경험한 분들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버릴 것 없는 좋은 것이다.  그러나 한국식 격언을 적용한다면 ‘지 치레나 잘 할 것이지 누구에게 가르치려 들어...’ 라고 사업에 실패한 재산이 없는 똥 묻은 개를 무안하게 만든다.  오히려 성공한 분들의 성공담을 삭혀 들어보면 특수한 조건과 소 뒷걸음에 쥐 잡듯 한 기막힌 타이밍 때문에 이루어진 것을 마치 자신의 노력과 자신의 앞을 내다보는 능력 때문인 것처럼 멋지게 포장이 되어서 떠드는 경우가 허다하다.  반대로 실패한 분의 솔직한 경험담은 누구에게나 도움이 될 수 있는 돈 주고도 못사는 값진 교육이건만.  

 

요즘 많은 목회자들이 멋있는 교회, 잘나가는 교회를 열심히 쫓아다닌다. “How to......."을 배운다.  결과는 이렇게 함으로서 정말로 잘 나가던 목사님을 장사꾼으로 만들어 버리기 십상이고, 또 이러한 것이 여러번 번복 되다 보니 교인 몇 명 안 되는 교회를 목회하는 목사는 무엇이 모자라는 이등 목사 취급을 받는다.  실정이 이렇다 보니 많은 목사님들이 있는 힘을 다해 큰 교회를 만들려고 앞뒤 가리지 않고 뛰신다.   다시 한번 생각 해보자.  정말 시골에서 교인 몇 명 안 되는 교회의 목사는 Mega Church의 목사에게 가르칠 것이 없겠는가?

 

필자의 모교인 SJSU의 미식 축구팀에 40여 년 전에 한 선수가 있었다.  그는 선수로서 주전 멤버로서는 단 한번도 뛰어보지 못하고 만년 후보선수였다. 그는 별로 빠르지도, 힘이 세지도, 제대로 차지도 그리고 받지도 못하는 정말 별볼 일 없는 선수생활을 지냈다.  그러나 그는 30여 년이 지나서 미식축구의 최고 팀인 San Francisco 49er의 수석코치가 되었다.  수퍼볼을 3번 이기고 나서 한 기자와 대담 중 ‘당신은 대학 시절 항상 후보로서 팀에 전혀 도움도 주지 못하고 정말 별 볼일 없는 선수였는데 어떻게 이 위대한 Joe Montana와 Jerry Rice를 이끌어 나갈 수 있느냐?’ 라는 질문을 받는다.  Bill Walsh의 명답은 ‘코치는 뛸 줄도 던질 줄도 몰라도 된다, 다만 그 들에게 지시만 하면 된다’. 생각을 해보자, 아무리 이 세계에 제일 잘 던지고 잘 받는 선수들이 코치에게 “당신이 직접 던져보라고” 아니면 “당신이 직접 뛰어서 받아 보라고” 한다면 이 팀이 어떻게 되겠는가?

 

교회에서도 많은 경우 목사님들이 불공평하게 교인들에게 힐책을 받는 경우를 본다. 한심 할 정도로 우리 교인들이 무식하게 억지의 요구를 한다.  목사도 사람인데 몇 푼 안 되는 봉급을 주면서 완전히 종 다루듯이 하는 교인들 그러면서도 그 목사가 조그만 실수나 모자람이 있으면 인정사정 없이 몰아 세우고 말 한마디 못하게 하는 우리 교인들…  사실 나 자신도 목사님들이 더욱 더 모든 면에 나보다 낫고 더 모범적인 삶을 살기를 바란다. 그러나 비록 목사인 자신은 지키지 못 하더라도 옳은 것이면 우리 교인들에게 가르쳐야 되는 것이다. 우리 교인들도 목사나 지도자 자신들도 못 지키는 부분이 있더라도 그 들에게 진리는 배워야 하는 것이다. 메신저를 볼 것이 아니고 메시지를 들어야 하는 것이다.

 

나 자신도 사업체나 사역장에서 후배들을 가르치면서 나의 성공담을 이야기 할 기회가 있으면 재미있고 자신있게 이야기한다.  그러나 그 내용들은 과장된 듣기 좋은 표현 일 뿐이다. 실질적 도움은 안 된다. 반면에 조금 창피하고 내놓기에 부끄러운 실수와 나의 과실 그리고 나의 아픔을 감추지 않고 솔직하게 실토를 할 때 듣는 이들에게 도움이 된다. 이렇게 나의 약점을 들어낼 때 나의 심정은 내가 정말 똥 묻은 개가 되어서 재 묻은 다른 사람들에게 무엇을 가르칠까? 혼자 질문을 해볼 때가 많다.

 

우리 사회에서 그리고 교회에서 이 똥 묻은 개들에게도 발언권을 주어서 이바지할 기회를 줌으로 그들을 살리고 또한 과정을 통해서 모든 관련된 사람들 간에 이익을 나누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