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붕 쳐다 보는 개

 

매년 여름방학 때면 하듯이 2003년 여름방학 동안에 큰아들 주형이와 일을 벌렸다.  이번에는 지난 몇 년 동안 비 올 때 마다 조금씩 비가 새는 지붕을 고치기로 하였다.  40여 년 묵은 지붕을 고치기 위해 우선은 모든 것을 뜯어내야 했다. 한번 손을 대기 시작하니 일이 엄청나게 불어나서 지붕 전체를 뜯어내는 것은 물론 그 밑에 있는 합판까지도 대부분 갈아야만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15살짜리 아들과 같이 이것을 뜯어내는데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었다.  이 작업을 2달간 마칠 때쯤 성경에서 지붕을 뜯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새삼스럽게 읽혀졌다.

 

성경 내용인즉 병 잘 고치는 명의 예수에게 맥 한 번 짚혀보고 병 진단과 혹 완쾌의 기적을 만나보기 위해 침상에 있는 환자를 친구 4명이 들고 찾아왔다.  그리고 그들은 지붕을 뜯고 예수 앞에 친구를 내려놓아 병을 완쾌 받게 하였다.

 

한번 생각을 해보자 – 왜 그 친구들이 힘들게 지붕을 뜯었는지?  남의 재산 목록 1호인 집의 지붕을 파괴까지 하며 엄청난 수리비를 감수하고 (우리 집 지붕 견적은 $8,500) 왜 그들은 지붕을 뜯었는지?  많은 사람들이 빤히 올려다 보는 앞에서.  아마도 그들은 처음에는 다른 사람들과 같이 직접 문을 통해서 들어가려고 했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의 소문이 너무나도 많이 퍼져있기에 그 집 주위에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와서 그 유명한 예수의 얼굴이라도 한번 보려고, 그 유명한 예수의 설교라도 한마디 들으려고 집이 메어지도록 에워싸고 또 에워쌓기에 이 친구들이 비집고 들어갈 수가, 전혀 틈이 없었기에 할수없이 그 쉽지 않은 지붕뜯기 방법을 체택한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서로 밀고 몸 싸움하며 예수에게 나가 보려고 하는 와중에 일부의 사람들이 지붕을 뜯는 광경을 한번 상상해 보자.  그리고 그 광경에 우리 자신들을 넣어보자.   예수는 그때나 지금이나 예수라 치고 그럼 우리는 과연 누구일까?

·            바로 옆에 있던 제자들?

·            집 안에 같이 있던 바리세인들? (속으로는 예수의 권위를 의심하던)

·            내 재산, 지붕이 뜯어지는 것을 아까워하는 집주인?

·            얼굴 쪽이 팔린다고, 안 가겠다고 버둥거리다 할 수 없이 끌려온 병자A?

·            혹시나 진짜 병이 날까 해서 싫다는 친구들을 동원한 병자B?

·            친구를 무척 사랑하기에 물불 (지붕)안 가린 친구들A?

·            쪽이 팔리고, 힘들고 하기 싫으나 친구가 하도 간곡히 부탁하기에 .. 친구B?

·            유명한 예수보려다, “지붕쳐다 보는 개”꼴이 된 수 많은 관중 중 하나?

 

이 광경에 내 자신을 넣어 볼 때 나의 의지에 의해서 결정권이 주어진다면 과연 나는 어느 쪽에 속하게 될 것인가?

 

당연히 대부분 사람들은 예수 옆에 있는 제자들이나 사랑하는 친구를 위해서 지붕을 뜯는 네 친구 중의 하나가 되기를 원할 것이다.  간혹 병 나음 받은 환자가 되기 원하는 분도 있을 것이다.  불행하게도 숫자적으로 보나, 솔직한 통계를 내보면 많은 사람들이 바라는 것과는 전혀 상관없이 수 많은 사람들은, 그 집 주위를 에워싸고, 혹시 예수를 한번 볼까, 혹 예수와 한마디 나눌 수 있을까, 혹 예수와 손 한번 만져 볼까 등등.  요즘식 표현으로 유명인사와 악수 한번 하고 사진 한 장 찍히고 또 ‘눈도장’ 하나 받을까 해서… 요즘 젊은 아이들 식으로 ‘그릅삐(Groupie)’ – 꼭 유명한 연예인들을 열광으로 반기는 수많은 인파의 파도에 휩싸인 그런 그릅에 속한 이들이 바로 우리 주위에 대부분 교인들인 것이다.

 

당시 이스라엘의 집들이 언덕을 뒤로 하고 있을 경우 지붕과 뒷동산이 맏닿기에 충분히 쉽게 지붕에 올라 갈 수가 있었다고 학자들이 설명을 한다.  아무리 지붕에 올라 가기가 쉽고 설사 지금 시대의 지붕과는 비교도 안되도록 뜯기 쉬운 아주 약한 지붕이라 해도  -  왜 문을 놔두고 뜯었나?  당연히 문으로 들어갈 수 없게 너무나도 많은 인파들이 집 앞을 에워싸고 있었기에 지붕이라도 뜯어야 예수를 볼 수 있는 최후의 방법이었다.  그리고 아마도 최상의 방법이었을 것이다.

 

우리 주위에는 이렇게 꼭 예수를 만나야 하는 사람들이 있지는 않나?  그들이 예수를 만나러 올 때 거들어 주지는 못할 망정 걸리적 거리는 방해꾼이 되지는 않는지.

 

“지붕 쳐다보는 개”라는 표현은, 어처구니 없는 상황, 내가 전혀 무능력 상태 일 때, 이루고자 하는 일이 눈앞에 있지만 전혀 무슨 도리가 없을 때 그 안타까움 까지 포함해서 표현하는 아주 재미있는 문장이다.

 

예수를 만나고자 할 때,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하고 또 부지런히 쫓아 다녔건만 마음대로 만나지지 않는 예수.  그 만나기 어려운 예수를 내 눈 앞에서 일부 사람들은 신기한 방법으로 예수를 만난다 – 그런 상황에서 밑에서 쳐다 보는 사람들이 ‘나도 저래 봤으면’ 하는 사람들이 꽤 있을 수 있다.  당연히 같이 할 수 있으나 대부분 사람들은 그냥 지붕만 쳐다보고 있다.  쳐다보는 것에 휘말려 자신들이 에워싸고 있는 그 상태 때문에 꼭 예수를 만나 봐야 하는 병자들이 방법이 없어 지붕을 뜯는 것 자체도 망각하고.

 

예수를 만나는 것에 대해서 특별한 계획과 열정과 방법이 없다 하여도, 최소한 다른 사람들의 걸림돌이 되지는 않아야겠다.  그러나 제일 중요한 것은 “지붕 쳐다 보는 개”가 되지 말고 예수를 직접 만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