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탕 - 보신탕 이야기

 

2001년 여름으로 기억된다. 한국에 사업차 출장 갈 일이 생겨서 아들에게 물어봤다. 같이 가지 않겠느냐고(사실 나는 혼자서 비행기 타는 것이 싫어서 아들이라도 같이 갔으면 해서) 13세 된 아이지만 순순히 가겠다고 한다. 단 한가지 조건이 있었다. 한국에 가면 옛날에 약속한 대로 보신탕을 같이 먹자고.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라난 나는 보신탕이라는 단어 자체도 싫어서 잘 모르고 지내던 음식이건만 미국에서 태어나 자란 아들이 먹겠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동네에서 잘 한다는 보신탕 집을 수소문해서 찾아갔다. 편육과 찌개, 그리고 국을 둘이서 실컷 먹었으나 별로 특별한 맛도 모르겠고 그저 고기 살은 기름이 많이 박혀있어 맛이 있으나 양념으로 마늘과 부추, 생강, 깻잎 등이 너무 많이 들어가서 보신탕 고유의 맛은 느껴보지도 못했다.

식사 후 장난꾸러기 아들녀석이 이 개고기를 미국식으로 만든 마른 고기(Jerky)도 살 수 있느냐고 한다. 왜 그것을 원하는지 물었더니 대답은 “우리 학교의 학생들과 선생님들 중 90% 이상이 북유럽 백인들인데, 이들에게 개고기를 몰래 먹이고 싶어서, 그리고 맛있게 다 먹은 후에 개고기였다고 알려주고 싶어서” 란다. 나도 어렸을 적에는 장난이 조금 심했었는데 피는 못 속이는구나 생각하면서 피식 웃고 말았다. 그러나 며칠 동안 그 말이 내 머리 속에서 사라지지를 않았다. 생각하면 할수록 왜 우리 미국에 사는 한국 사람들은 내 나라의 풍습인 여름철 보신탕을 쉬쉬하면서 눈치 받는 음식으로 취급해왔을까 하는 의문이 생겼다. 물론 보신탕이 내노라 하면서 막 먹을 정도의 별미는 결코 아니지만 그렇다고 무조건 창피하다는 생각 때문에, 한국음식을 모두 싸잡아서 냄새나는 별 볼 일없는 음식으로 격하하는 것도 잘못인 것 같다.

 

성경에도 확실히 쓰여있다. 구약에 하나님께서 노아 할아버지에게 네 발로 기는 모든 짐승을 먹으라고 하신 구절이. 사실 요리만 잘하고 무슨 짐승인지 모르고 먹으면 전혀 차이가 없는 음식이 우리의 선입감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고 다스리게 하시며 식량으로 쓰라 하신 것을 낭비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또 신약에도 확실히 기록되어 있다. “사람의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

 

성경이 말하는 입에서 나오는 것에 대해, 신학적으로는 확실히 모르기에 나름대로 풀어보고자 한다. 먼저 말버릇 - 우리 한인들의 나쁜 버릇 중 하나가 모든 타 인종을 깔보는 투로 부른다는 것이다. 다른 민족들을 보더라도 우리 한국인들처럼 남들을 깔보고 인종차별 식의 이름을 부르는 민족은 없는 것 같다. 단일 민족으로 오천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한민족이라고 하지만, 사실 역사적으로 보면 일본에게 짓밟혀 일본인의 피가 섞이고 중국에게 아부하려 중국인의 피가 섞인 이 엄연한 사실을 무마하려고 타 인종을 더욱 적대시하는 것은 아닐까. 우리 미국에 사는 한인 2세들에게 물어 보라. 어느 나라 사람들이 가장 다른 인종을 차별하고 무시하며 듣기 거북한 표현을 쓰는지. 대답은 한결같이 우리 한국인들이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왜 한국인?” 그에 대한 대답 또한 한결같다. “부모님들이 늘 쓰는 단어들을 알고 나서” 라고 한다.

 

얼마나 많이 사용되는지 목사님들도 신경을 덜 쓰면 설교에서도 가끔 들을 수가 있고 또 너무나 많이 듣기에 자연스럽게 까지 들려지는 한인들만의 타 인종 표현의 예를 들어보자.

흑인-깜둥이/연탄/숯, 백인-양놈/코쟁이/흰둥이, 멕시칸-맥짱, 필리핀-빨래비누, 

월남인-땅콩/베트콩, 일본인-쪽발이/왜놈, 중국인-짱개/때놈/오랑캐, 혼혈아-짬뽕 등 참으로 듣기에 아름답지 못한 표현 투성이다. 이런 단어들을 자주 쓰게 되면 자연히 마음으로도 상대방을 깔보게 되고 심한 경우에는 쓸데없는 우월 망상증까지 갈 수 있다. 

 

우리 문화라고 하면 조금 심한 표현일 것 같지만 내 뜻을 정확히 전하기 위해 쓰겠다 - 경쟁에서 정당하게 못 이길 때는 상대를 끌어 내려서 비겁하게 이기는 방법이 있다. 이렇게 이기고도 결과로 과정을 정당화하는 우리 문화. 한인 회장 선거 때 흔히 보아온 창피한 사실. 또 한인 비즈니스끼리의 경쟁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정당한 경쟁보다는 상대의 약점을 노려 경쟁하는 우리의 문화는 교회들간의 경쟁에서도 때로 나타나곤 한다. 같은 한국사람들 사이에서도 출신 지역에 따라 구분하여 타지방 사람들을 표현할 때 부정적으로 부른다. 입에서 나오는 말로써 저지르는 이 죄는 하나님도 미리 우리에게 주의를 주신 것이다.

 

미국에 온 연수는 상당히 되었으나 영어를 완전히 구사하지 못하는 분들간에 영어 욕을 많이 하는 분들을 종종 목격한다. 그 분들은 그 욕의 뜻도 제대로 모르는 채 습관적으로 내뱉는 경향이 있다.

 

이렇게 입에서 나오는 말로써 우리 자신을 더럽히는 것은 무서워하지 않고 전혀 상관없는 입으로 들어가는 보신탕을 가지고 남들에게 창피하다는 이유로 우리 문화를 감추려 할 때 나는 내 아들녀석보다 못한 한인 어른들을 대표해서 우리 2세들에게 사과해야겠다. 어른들이 먼저 입에서 나오는 단어들을 조심스럽게 사용해서 다음 세대까지 나쁜 버릇이 대물림 되지 않아야겠다.

 

내년쯤 한국에 가게 되면 또 개탕/보신탕/사철탕/영양탕이나 실컷 먹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