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 같은 목사

 

큰아들 주형이가 3살쯤 되었을 때 순종 강아지를 선물로 받은 적이 있다. 호주산 쎄빠트였다. 개 종류에 대해서는 알고 있는 상식이 별로 없기에 책을 찾아보니 전에 모르던 색다른 사실들을 알게 되었다.

 

보통 우리 한국 사람들에게는 쎄빠트는 독일산이 많이 알려져 있다. 이 독일산 종자는 호신용으로 개량되었기에 사나우며, 독일군이 전쟁터에서 보초로 사용하던 종자이다. 내가 한국에서 자랄 때는 투견에도 많이 쓰이던 싸움용 개이다.

 

쎄빠트하면 자연히 독일산 밖에는 모르던 나에게 호주산은 아주 신기한 개였다. 눈은 회색과 파랑색을 내기에 아주 기분이 나쁘다는 것이 모든 사람들의 공통된 의견이고 몸집은 독일종에 비해 반도 안 되는 작은 편이며 싸움은 잘못하는 종자이다. 늑대에서 시작되어서 애완용으로 바뀔 때까지 수 천 년의 많은 시행착오를 거쳐서 개종되어온 개들은 모두 목적에 따라서 그들의 모양, 색깔, 성품 등이 만들어져 왔다. 이 호주산은 이빨의 모양이 결정적으로 중요한 몫을 차지하는데 후에 설명하기로 한다.

 

쎄빠트(Shepherd - sheep herd - 양을 치는 - 목자. 동사로 사용될 때는 lead, conduct, direct, guide, pilot, point the way, steer, show the way, route등의 뜻)는 참으로 성서적으로 볼 때 목사님들의 업무규정인 것 같은 훌륭한 단어이다. 이처럼 좋은 단어가 어떻게 그 무섭고 사나운 호신용, 그리고 싸움하는 개의 대명사가 되었나 한번쯤은 생각해보게 된다. 요즘 많은 목사님들이 사실 질이 좋지 않은 교인들과 자주 부닥치다 보니 본인들도 모르게 사납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사업관계로 출장을 자주 가게 되는데 비행기 여행은 싫어서 차로 많이 다니다 보니 시골에 양치는 개들을 종종 보게 된다. 보편적으로 양을 치는 개 중에 독일종은 전혀 없고 사실 호주산이 대부분이다. 왜 그러한가 물어보니 대답이 재미있다. 대답인즉 호주산은 똑똑하고 귀가 밝고 눈도 아주 좋다. 거기에다 움직이는 속력이 아주 빠르다. 그러나 제일 중요한 사실은 이빨의 모양이라 한다. 대부분의 개들의 이빨은 안으로 향한 옹니이기에 한번 물고 늘어지면 많은 상처가 난다. 불도그와 같은 투견들은 턱이 한번 문 상태에서 잠기면 누가 풀어 주든지 그 상대가 찢어지든지 해야 끝이 난다. 그러나 이 호주산 쎄빠트는 유별나게 이빨이 바깥으로 향한 뻐드렁이 이다. 따라서 아무리 자기가 힘있게 물어도 상대가 당기면 그냥 미끄러지듯이 빠진다. 양을 치는 목자 개로서는 아주 적합한 것이다. 혼자 떨어져 돌아다니는 양을 물어서라도 다시 몰아와야 하는데 그 양의 가죽과 몸을 다치지 않고 일을 수행할 수 있는 것이다.

 

이와 반대로 취미인 멧돼지 사냥을 가면 거기서 사용하는 사냥개는 대부분이 독일산이지 호주산은 없다. 당연히 상대를 물어서 다치게 해야 하는 때에는 호주산은 전혀 쓸모 없는 개이고 반면에 독일산이 적합한 것이다.

 

성경에서는 우리 예수쟁이 성도들을 양에 비유하곤 한다.

양에 대해 조금 살펴보자. 눈이 엄청나게 나쁘기에 3미터 밖은 희미해서 볼 수가 없단다.  코는 냄새를 제대로 맡지 못하고, 귀는 그다지 민감하지 못하고며 이빨은 겨우 풀이나 뜯어먹을 수 있고, 목소리는 누가 들어도 무섭지 않고, 달리기는 아주 엄청나게 느리고 수영도 못하기에 물에 빠지면 많은 털 덕분인지 물에 빠져 죽는 수가 태반 등을 볼 때 양은 누구를 해치지 못하며 적에게 대처를 전혀 할 수 없는 아주 무방비 상태의 약골이다. 

 

이스라엘은 사막지대이기에 자연적인 풀밭이 전혀 없고 양들이 먹을 수 있는 풀밭은 사실 목자가 물을 대서 만들어 놓은 인조농장들이다. 이러한 풀밭도 양을 계속 한자리에 머물게 하면 이 미련한 양들은 옆에 있는 풀은 보이지도 않기에 무조건 코앞에 있는 풀을 다 먹고 뿌리까지도 먹어 버리기에 양이 지나간 곳은 몇 해 동안 풀이 다시 나지를 않는다고 한다. 요즘 미국에서는 산불이 나서 위험한 동네에 Fire Break Line을 만들 때 양떼를 사용한다. 이처럼 양을 먹여 살리려면 계속 움직여야 하는데 이 양들이 제대로 움직여 주지를 않는다. 왜냐하면 양들은 게을러 빠져서 누가 귀찮게 하지 않으면 배가 너무 불러서 쓰러질 때까지 먹는다. 또 목자가 아무리 소리를 쳐도 제대로 듣지를 못하기에 가장 요긴하게 사용되는 것이 개들이다. 개 한 마리가 양 백 마리는 쉽게 친다고 한다.

 

정리해보기로 하자.

양은 성도요 목자는 예수님 그러면 개는 누구일까?  바로 목사님들인 것이다.

양을 돌보는 쎄빠트의 이빨이 너무 세서 우리 양들의 몸에 상처가 난다면 이 개는 적합한 개가 아닌 것이다. 목자가 좋아하는 개는 길 잃은 혹은 게을러서 움직이지 않는 양을 더 좋은 물가로 인도하기 위해서 물어야 할 때가 있을 때 그 양들에게 상처를 입히지 않는 개이며 이런 개를 목자는 아주 귀하게 여길 것이다.

 

나는 어리석고 게으른 양인데 내 주위에 호주산 쎄빠트가 많아서 늘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