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들은 색맹

 

특별한 취미나 특기가 없던 내가 대학 3학년 때부터 사진에 취미를 들였다. 정식으로 배운 적도 없는 내가 사진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우연한 기회였다. 어느 날 교회 어른 한 분이 돌아가셔서 장례식에 참석해보니 사진이 없었다. 내 아버지께서도 마땅한 독사진이 없으셔서 한국사진관에서 찍은 여권사진을 확대해서 뿌연 사진을 장례식에 사용한 기억도 있기에, 내가 직접 교회 어른들께 독사진을 찍어 드려야겠다는 동기로 시작된 취미였다.

 

당시 한인사회에 유일하게 미라마 사진관이 있어서 그 사진관의 도움을 얻어서 교회 사진대회도 치르고 또 많은 노인분들께 독사진을 찍어 드렸다. 근래에도 참석하는 장례식에서 당시 찍은 사진이 사용되는 것을 보고 속으로 뿌듯함을 느끼곤 한다. 이 사실을 아는 이는 아마 나와 그때 사진 찍어주신 미라마 사진관 김사장님 뿐일 것이다.

 

이렇게 시작한 취미가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 깊이도 더해갔다. 조금 실력이 생기니까 선배들이 흑백사진을 찍어보라 하여 몇 번 시도를 해보니 생각보다 힘들었다. 사진의 대상이 가지고 있는 색깔을 미리 흑백으로는 어떻게 나올 것인가를 생각해놓고 촬영을 해야 하고 그 외에 햇빛조정, 후레쉬작동 등 모든 것이 더욱 까다로웠다. 흑백촬영을 그저 단순하게 생각했었는데 실상은 그것이 아니었다.

 

개에 대한 관심을 갖다 보니 어느 책에선가 개들 눈에는 흑백 밖에는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사실을 알고 나서는 제일 먼저 내가 흑백사진을 배울 때 생각이 떠올랐다. 빨강과 파랑, 노란 것 등이 너무나도 내 눈에는 쉽게 분간이 되는데 이것이 보이지 않는 개들에게는 그저 다른 농도의 흑백이 아니겠는가? 장님 길잡이 하는 개들을 훈련시킬 때 가장 중요시 여기는 것이 신호등 색깔의 위치를 가르치는 것이라고 한다. 색깔을 알지 못하는 채 그저 위치로 알게 하기 위해서는 이해가 아니고 암기를 시키는 것이라고.

 

사람들과의 관계도 이와 같은 면이 있다. 나는 총천연색으로 보이는데 상대방은 흑백으로 밖에 보지 못하니 당연히 색깔로 대화를 할 것이 아니고 위치로 해야 할 때가 있는 것이다. 이러한 것이 더욱 더 뚜렷이 나타날 때가 있는데 이것은 전도를 할 때이다.

 

우리 기독교인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이 아름다운 세상을 총천연색으로 누리며 산다. 하나님이 6일만에 말씀으로써만 만드셨으나 무한히 아름다운 이 세상. 하물며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처소를 준비하고 다시 오신다고 약속하고 가셔서 지난 이천여 년 동안 손수 만들고 계신 천국은 얼마나 더 아름다울까? 생각만 해도 짜릿해지는 아름다운 천국. 그곳을 보고도 형용을 할 수가 없기에 그저 보석이 깔리고 금과 은으로 덮였다고나 설명하는 천국.  이러한 천국을 흑백 밖에는 보지 못하는 세상 사람들에게 설명하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주위에서 너무 많이 본다. 교회생활을 오래한 기독교인이 생전 처음으로 교회에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 천국을 설명하는 과정에 너무나 알아듣기 힘들고 감이 전혀 잡히지 않는 단어들로 설명을 하니 알아듣지도 못하고 설명을 하려는 당신도 너무나도 답답하고 상대가 미워질 정도로 말이 안 통하는 경우들을. 그들에게는 생소한 단어들인 성령, 영성, 부활, 재림, 삼위일체, 동정녀임신, 원수사랑, 죽어야 살고, 주면 생기고 등 이해가 안되고 일반상식에 어긋나는 방식으로 설명을 하니 못 알아듣는 것이 당연하다. 이럴 때는 총천연색으로 설명을 하지 말고 정말 흑백밖에는 못 보는 개 훈련시키는 식으로 몸소 실천으로 계속 반복하여서 암기를 시키는 것이 제일 빠른 길이다. 다시 말해서 선포하는 식의 설교로써 이해시키려고 시간낭비 하지 말고 사랑을 베풀면서 그들과 교제를 통해서 그들이 이해할 수 있는 정도의 암기훈련이 지나면 그들도 우리와 같이 하나님 나라의 공동체를 총천연색으로 볼 수 있고 나아가서 아름다운 이 세상을 만끽하며 또한 나름대로의 천국에 대한 아름다움을 기다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전도를 하려면 그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단어들을 사용하고, 단어가 모자라면 위치를 가르치고, 또한 이 모든 전도 시도 전에 그들과 교제를 통해서 각자의 필요를 알고 그것을 충족시켜 주면서 한 발짝 한 발짝 가까워지는 것이다. 또한 그들에게 오라하며 기다릴 것이 아니고 우리가 솔선수범해서 그들이 있는 곳에 찾아갈 때 전도의 가능성이 열린다.

 

우리끼리 그저 아름다운 이 세상을 즐기며 전도 대상에게 우리들만의 은어를 사용할 때 전도가 이루어지는 것은 기적이다. 이 기적도 좋지만 우리의 노력에 비례해서 성공률을 높이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