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와 술병

 

 

영화에서도 많이 보고 또 그림으로 우리에게 익숙한 술병을 목에 맨 개가 있다. 쌔인트버나드(Saint Bernard – St. Barnhardshund)라 불리는, 스위스 산맥에서 길 잃은 자들을 구조하는 특이한 개다

 

주 후 923년에 Annecy근처에 있는 Monthon성에 유복한 집안에 태어나서 당시 최고의 교육을 받은 버나드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부모가 정해준 결혼자리를 마다하고 카톨릭 신부가 되어서 당시에 프랑스와 독일에서 로마로 가는 지름길 해발 8,000ft 산 정상에 순례자와 참배자들이 안전하게 묵고 갈 수 있게 수도원과 숙박소를 운영했다눈보라가 심하게 치는 날이면 이 개들을 내 보내어서 길 잃은 나그네들을 이곳으로 인도하거나 그들이 못 움직이면 이 수도원으로 돌아와서 구조대를 거기까지 인도하는 개로 훈련이 되었던 것이다이 수도원과 숙박소는 천 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같은 위치에서 헌금을 바탕으로 40여명의 신부와 수도사들이 지나가는 자들을 위해서 무료 봉사하고 있다.

 

이 개들은 추위를 잘 감당하고 2-3미터 이상의 눈 속에 묻혀있는 사람도 냄새를 맡아서 찾아내는 아주 특이한 개다눈 속에 쓰러져 있는 사람을 발견하면 혀로 핥아서 그를 정신차리게 한다. 만약 움직이지 못하면 옆에 누워서 체온으로 보호하며 개들 중 한 마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러 간다이런 본능을 발전시켜서 아예 목에다가 과실주를 담아서 필요한 사람이 추위를 이기기 위한 비상 대책의 임무를 지니고 다니게 한 것이다.

 

요즘 세상에 살면서 눈길에서 길을 잃는 경우는 많지 않다. 그러나 살면서 사업상 혹은 가정생활상, 사회상 그리고 대인관계상에서 가야 할 길과 이성 혹은 동반자를 잃는 경우는 허다하다이렇게 해매이고 살 때 시간이 지날수록 대책은 없어지고 진이 빠지면서 아예 문제에 묻혀 버리고 만다그리고 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우리의 체온과 맥이 떨어져 목숨까지도 잃게 된다이런 상황에서 술병을 목에다 걸은 개를 만날 때 어떠한 심정일까 생각해 본다

 

우선 목에다 매 달은 술병에서 술을 마실 때 정말 꿀 같은 맛일 것이다. 특히 얼어 죽기 직전 추울 때에 먹는 술은 생명수라 불러도 될 것이다.  이 같이 필요한 사람에게 나누어 주는 것은 (꼭 술을 주라는 것은 아니지만) 정말로 우리 기독교인들이 해야 하는 것이다. 그것도 이미 눈(문제)에 묻혀서 헤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우리가 찾아가야 한다어느 정도 힘이 생겨서 걸을 수가 있을 때는 당연히 그들을 안전한 처소로 데리고 와서 쉬게 하고 먹이고 입혀서 다시 그들이 혼자 길을 갈 수 있게 하여야 하는 것이다

 

만약 이 쓰러진 나그네가 전혀 움직이지 못 할 때는 그냥 옆에 누워서 우리의 체온밖에는 나눌 수 없는 상황도 있다이때는 아무 이유 없이 그리고 조건 없이 그냥 옆에 있어주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사실 기독교 사상에서 옆에 그냥 있어주는 사역처럼 온전한 사역이 없다. 예수님도 항상 우리를 격려하실 때는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 lo, I am with you always…”라 하셨다더 이상 바랄 것이 없는 것이다나 자신도 인디언 사역을 하면서 여러 가지 일을 벌렸으나 별 볼일 없이 그냥 옆에 있어주는 사역만큼 중요한 일이 없었다 – 이것은 내가 만들어 낸 말이 아니고 몇 년을 같이 일을 한 인디안 사역자가 직접 들려주고 나 자신이 경험한 비밀이다.

 

사실 옆에 있는 것이 왜 중요한가 생각을 해보았다개가 옆에 있어봤자 조금 따뜻한 것 외에는 직접 도움은 안 된다. 그리고 이 개의 목에 걸려있는 술통에서 따라 술을 마셔도 바로 힘이 나서 걸을 수있는 것도 결코 아니다. 오직 잠깐 일시적인 도움뿐이다그렇다면 왜 얼어 죽기 일보직전의 사람이 이 개를 보면 구세주를 본 것같이 반가워 하나이 개 뒤에는 바로 구조대가 오기 때문이다이 조그마한 개의 체온과 술은 이나마 구조대가 올 때까지 필요한 시간을 버는 것이다 – 바로 생명을 연장해 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요즘 세상에 사업체, 가정, 사회, 대인관계 등에서 힘들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나? 그 많은 그리고 커다란 상황을 우리가 직접 감당할 수 없다. 다만 우리 주위의 필요한 사람들에게 옆에 있어 주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조그만 도움을 주고 시간을 번 다음에 우리 뒤에 확실한 구조대 성령과 예수 그리고 하나님이 이 들에게 긍극적으로 도울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 기독교인들이 해야 하는 중요한일 중의 하나이다.

 

실직적 그리고 물질적으로 도움이 필요한 경우에 우리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면 그 외 필요한 모든 것은 주님이 직접 혹은 다른 사람과 상황을 통하여 간접적으로 해결하신다. 그렇기에 우리는 계속 네트워킹하면서 투명하게 서로의 팀 사역을 하면 된다.

 

세인트버나드 개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구조대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있듯이 우리 교인들은 우리가 해야 할 일들만이라도 착실하게 해야겠다.

 

버나드 신부는 자신이 죽은 지 600여년이 지난 1681년에야 당시 이노센트 11세 교황으로부터 “St. Bernard - 버나드”신부로 칭하여졌다이와 같이 우리가 하는 일을 누구에게 인정 받는 것을 기다릴 필요도 없는 것이다그래도 혹시 “St. Kyung - 성 경석”이라 하는 개 종자가 생길까?  혹은 내가 요리하는 것이 취미이니 “경석 보신탕” 정도라도… 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