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개와 흰 개

래브라도(Labrador) 개 종자는 인정받는 순종이 되려면 색깔이 섞이면 안 된다. 즉 몸 전체가 흑색이든, 갈색이든 아니면 노란색이든 무조건 통일 된 색깔이어야만 된다. 흑색의 래브라도 중에 가슴에 흰색의 별무늬가 있는 개는 너무나도 멋있지만 순종으로는 인정을 받지는 못한다. 내가 기르는 “몰라”는 거의 흰색이지만 꼬리 끝과 귀에 아주 엷은 노란색을 띤다. 그래서 그의 서류를 보면 순종이라고 인정을 받기 위해 색깔이 노란색으로 등록 돼 있는 것을 보면 완전히 눈가리고 아웅이다. 개의 색깔이 무슨 상관이 있을까? 그냥 주인이 좋으면 되는 것이지. 마찬가지로 개가 순종이건 조금 다른 피가 섞이면 어떤가? 그냥 주인이 좋으면 되는 것이지. 완전히 주인들이 자신의 개가 순종이니 아니기에 따지는 것은 종이장 하나 차이다. 원만한 성격을 가지고 아주 심한 잡종이 아닌 대충 기반이 잡힌 개를 주인이 제대로 키우면 어느 정도 훈련에 따라서 주인을 기쁘게 해주는 개가 될 수 있다.

막내동생이 입양한 검은색 “찰리”는 반은 래브라도이고 반은 Great Dane이기에 엄청나게 큰 래브라도처럼 보인다. 막대한 비용을 지출해서 영국으로 이민을 간 후에 들려온 개에 대한 첫 뉴스는 집 뒷뜰 몰래 들어오는 여우를 한입에 물어 죽였다는 소식이었다. 주인인 동생에게 “찰리”는 집을 잘 지키는 개로써 한층 더 귀여움을 받는 개가 되는 동기였다. 사실 이 개는 6개월 이상의 특수 훈련을 통해서 병원과 공공기관에 마음대로 데리고 다닐 수 있는 자격증을 취득했다. 어린 아이가 와서 몽둥이로 때리고 귀를 잡아 틀어도 절대로 움직이지도 않고 온순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훈련을 받은 개다. 훈련의 목적은 병원 등에, 사람들 옆에 있으면서 친구가 되어주는 그리고 학교나 아이들 옆에 가서 놀아주는 개다. 이러한 특수 훈련을 받은 개의 종자를 보면 당연히 성격이 온순한 종자를 사용한다. 그러나 개의 색깔은 전혀 상관이 없는 것이다.

내가 대학교 다닐 때 들은 기억이 난다. 당시 중국의 지도자 등소평 씨의 말 중에 “흑묘백묘 주노서 취시호묘(黑猫白猫 住老鼠 就是好猫)”라고 미국에서 한동안 말거리가 되었다. 당시는 미국사람들이 확실히 알아듣지 못해서 대처하지 못한 이 말의 20-30년 사이에 종이 호랑이가 진화되어서 진짜 호랑이가 될 줄이야. 내용을 요즘에 와서 다시 들춰보면서 새겨보니 “검은 색의 고양이든 흰 색의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라는 얼핏 듣기에는 평범한 말 같으나 아주 깊은 철학적 발언이었다. 이 문장을 잘못 해석하면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고 무조건 좋으면 좋다”라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그가 이 문장을 사용했을 당시 뒤에 도사리고 있던 철학사상은 “공산주의 / 사회주의 원칙을 버리지 않고”가 완고히 자리를 잡은 토대를 바탕으로 한 말이었다. 즉 “무조건 – Regardless”이 쏙 빠진 아주 안전한 그리고 뼈대 있는 철학적 문장이었다.

이런 사상을 한국에서 일어나는 일들과 비교해 볼 때 중국의 공산국가의 지도자 등소평 씨의 가치가 한층 돋보인다. 북한의 김정일 씨와 흥정하는 노무현 씨, 반미 감정이 폭팔하는 학생들의 데모 그리고 얼마전 아프간에서 일어났던 한국인 단기 선교단 압류사건 등등 과정과 결과가 “흑묘백묘”를 모방하는 것 같으나 뒤에 조종하는 철학 사상과 원칙이 진공상태라는 염려를 떨어낼 수가 없다.

앞으로 며칠 안에 결정이 될 나의 인디언 사역도 사실 “흑묘백묘”이다. 무조건 인디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전파될 수 있다면 내 사업에 자리를 잠시 비울지라도 덤벼볼 만한 가치의 사역인데 이 사역과 사업을 동시에 운영하면서 방법론과 과정상 한발짝 한발짝이 정말로 나의 생각이 아닌 주님이 보여주신 목적을 위하여 좌우로 치우치지 않고 계속할 수 있을지 걱정이다. 오늘 아침에도 묵상을 하면서 내가 자주 읽는 잠언 16장을 읽는다. “계획은 내가 할지라도 발을 옮겨주시는 분은 결국 주님”이라고 쓰여있다.

내가 흑묘이든 백묘이든 주님이 쥐를 잡으라고 했으니 열심히 쥐만 잡자. “몰라”가 흰개든 노란개든 전혀 상관이 없는 것이 그는 언제라도 나와 눈이 마주치면 그 굵고 힘찬 꼬리를 풍차 돌듯이 빙빙 돌리면서 반겨준다. 내가 기분이 나쁜 날 옆에 가면 눈치를 보면서 다가와서 내 손을 슬쩍 혀로 핥준다. 그리고 자신의 머리을 내 손 밑으로 들이대면서 쓰다듬어 달라고 반 강제적으로 비벼온다. 동생의 “찰리”는 온 몸이 검은색인데 이제는 나이가 드는 것을 감추지 못하는지 수염과 코 밑에는 흰 털들이 드문드문 보인다. 그러면서도 주인을 따라서 지난 달 26마일의 마라톤 코스를 같이 뛰었다고 동생은 자랑이다.

개나 고양이는 사람을 즐겁게 해주고, 쥐를 잡는 등 나름대로의 임무와 목적이 있다. 이 것들만 온전히 수행을 하면 최고인 것이다. 더 이상 바라지도 않고 만약 이하일 경우에는 교체를 해버리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인간의 삶은 그리 간단하지가 않은 것 같다. 엄연한 임무와 목적이 표면에는 있지만 그 밑에 깔려있는 사상, 다음 차원의 보이지 않는 무언과 무형의 목적이 있는 것이다. 당장은 없어도 되는 것 같고 있어도 값어치가 부여되지 않는 무엇인가 버티고 있다.

사역도 마찬가지로 무조건 예수님의 복음이 전해지고 받아들이는 인디언들로 하여금 뜻 있고 가치 있는 삶을 누리게 할 수만 있다면 무엇이들 못하랴. 내가 인디언들의 문화와 가치관을 받아드려서 그들과 같아지던지 아니면 나의 세계관을 그 들에게 접목시키고 필요에 따라서는 반강제적으로 그들에게 나와 비슷한 인간을 만들 것인지 두고 봐야겠다. 결국 “나를 본 받으라”고 말할 수 있는 예수나 바울이 아닌 부족한 나의 삶을 더욱더 성경적으로 살기위해 노력을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