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을 살린 개

요즘 날씨가 아주 쌀쌀하다. 밤에는 영하까지 내려가는데 얼마 전에 데리고 온 닭 식구가 있다. 병아리보다는 크나 아직 완전한 닭은 안된 어린 닭이 걱정이 되어서 그의 자리 위에다 100촉 짜리 전등을 켜서 따뜻하게 만들어 주었다. 아침에 7시반 쯤 일어나서 불을 끄려고 나가는데 문 앞에 ‘몰라’가 누워 있었다. 항상 놀고는 싶지만 아침부터 소란을 피면 야단맞으니 그냥 누군가가 나와 주기만 기다리며 누워 있었다. 내가 유리문을 열고 나가니 ‘몰라’는 반가워서 펄쩍펄쩍 뛰어대며 짖는다. 그때 갑자기 우리 뒷 뜰에 앉아서 닭모이를 주어먹던 40여 마리의 동네 새들이 놀라서 푸드득 날아간다.

그런데 갑자기 다른 새들과 전혀 다른 색깔과 크기의 새가 우리 닭 한마리를 덮쳤다. 얼른 보니까 닭보다도 두 배 이상 큰 매였다. 시골이나 시외 골프장에서 스컹크나 다람쥐 등을 매가 잡아먹는 것을 본적이 있다고는 여러번 들었다. 그런데 산호제 시 한복판에 그런 새가 날아 다닐 줄을 꿈에도 생각 못한 것은 당연했고 그런 새들이 닭을 공격할 줄은 전혀 몰랐다. 날카로운 발로써 우리 닭을 낚아채어 막 날아가려던 찰라에 내가 본 것이다. 많은 새들이 동시에 막 울면서 날아가고 개는 막 짖어대니까 매도 놀라서 온갓 힘을 다해서 몸부림치는 닭을 끌어 올리려고 날개짓을 하는데 먼지도 폭탄이 터진 것처럼 자욱하게 많이 나고 닭의 살려 달라고 외치는 소리로 완전히 수라장이었다.

금방 침대에서 나온 잠옷 차림에 슬리퍼를 끌고 목청이 터져라 “No, No, No, Get away, Get away, Bad bird, Bad bird”를 외치며 달려갔다. 거리가 닭장까지는 15미터 정도 된다. 몇 초를 뛰면서 소리를 지르니까 ‘몰라’도 덩달아 뛰면서 내가 소리지르는 사이에 “몰라, Go get her, Go get her” 라고 외치는 소리를 알아 들었는지 아니면 혹시 ?????.

우리집 개 ‘몰라’는 “앉어 – Sit” 수준의 단어 몇 개 외에는 제대로 알아 듣지 못하는 아주 평범한 개였기에 절대로 내가 닭을 살리라는 명령을 알아들을 수 있는 개가 아니였기에 더욱더 황당한 사건을 목격하게 된 것이다. 슬리퍼를 끌고 뛰는 나보다 훨씬 앞서서 뛰어가던 ‘몰라’가 1미터 이상 높이 점프하면서 닭을 잡고 날아가던 매를 덮친 것이다. 영화에서 보는 그런 멋있는 공격은 아니었고 그냥 뛰어 오르다가 얼굴로 매를 들이 받은 것이었다. 폼은 없었지만 결과는 매의 발에서 닭이 떨어지고 매도 넓은 날개를 휘두르면서 날아갔다.

‘몰라’를 좀 더 설명해야만 그의 영웅적 행동이 더 빛날 것 같다. 개 훈련 학교를 후문으로 졸업한 것은 고사하고 대부분들의 개들 본능인 던져주는 음식도 잘 받아먹지 못하는 것이 ‘몰라’다. 그는 던져주는 과자의 반 정도만 받아 먹고 나머지는 땅에 떨어진 후에 주워 먹는다. 그 정도로 운동신경 혹은 개의 신분 기본조차 없는 개이다. 그런데 이날은 아주 달랐다. 뛰는 나를 추월해서 달려가서 하늘을 향해 멋있게 뛰어 올라 자신의 머리와 앞 발로 닭을 훔쳐가는 매를 덮친 것이다. 이때 비디오를 찍었다면 우리 ‘몰라’는 언론을 타게되어 완전히 영웅이 되는 엄청난 사건일 뻔했다.

정신을 가다듬고 다른 닭들을 찾고 특히 새로 온 어린 닭을 찾느라고 허둥된다. ‘몰라’는 뭔지도 모르고 그냥 여기저기 나를 쫒아 다닌다. 겁먹은 닭들을 몰아서 닭장에 넣으려는데 진짜 겁을 먹었는지 닭들이 정신없이 도망다니기에 바쁘다. 닭들을 몰아다니면서 ‘몰라’가 근처에 설 때 닭들의 반응을 관찰하면서 당연하지만 재미있는 현상을 목격했다.

닭은 ‘몰라’가 엄연히 자신의 생명을 구해준 은인(은견?)인데도 전혀 모른다. 오히려 ‘몰라’를 더 피한다. 왜냐하면 매가 자신을 잡아서 올라갈 때 느닷없이 덮친 자신을 해치려는 적으로 안다. 닭 대가리로써는 당연히 ‘몰라’는 또 하나의 엄청나게 크고 무서운 존재일 뿐이다. 지난 1개월 동안 닭장 문을 활짝 열어놓고 방사를 시작했을 때부터 한번도 ‘몰라’는 닭을 해하지 않았다. 종종 닭에게 모이를 주면 샘이 나는지 자신이 먼저 시식을 해 보느라 닭들과 몸싸움은 몇 번 했지만 정식으로 ‘몰라’가 닭들을 건드린 적은 전혀 없다.

이런 상황에서 왜 닭들은 아직도 ‘몰라’가 적이라고 간주하고 도망을 다닐까? 진짜 닭 대가리라는 말이 멍청이라는 말과 같구나 생각을 하면서 종종 우리 인간 사이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돌이켜 본다. 조물주가 인간을 도와 주기 위해서 일어나는 사건을 우리 인간들도 순간적으로 닭 대가리가 되어서 은혜를 감사함은 고사하고 더욱더 멀리 도망을 가는 바보짓을 목격한다. 그리고 그 머리로 생각하기를 이 위험을 극복한 것이 내 힘과 내 능력으로 한 것으로 착각하고 자신은 전혀 도움이 필요하지 않다는 망상으로 삶을 이어간다. 이것이 더욱더 뚜렷하게 보이는 것이 진짜 황당하고 엄청날 일 일 때는 누군가가 간섭한 자국이 현명한데도 자신이 잘나서 좋은 결과가 나왔다고 더 잘난 체하면서 간증이라는 명목으로 자랑하고 다닌다.

우리가 큰 일을 직면했을 때 다른 커다란 일이 닥치는 것을 두려워하지만 말고 한번 쯤은 뒤돌아 볼 만하다. 아마도 사탄의 꾐에 걸려서 사망의 길로 가던 상황에서 긍휼하신 조물주가 우리를 살리려고 도운 경우가 많았을 것이다. 그런데 이것을 직시하지는 못할 망정 “하나님이 나를 버렸다” 혹은 “하나님의 도움없이도 내가 극복했다”라는 망언을 하지는 말아야겠다. 우리 인간이 무한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고 다들 외친다. 그러다 동시에 우리 인간은 진짜 연약한 존재임을 인정해야 한다. 서로 돕고 사랑해야 함은 물론이고, 우리가 예측 못하는 엉뚱한 도움이 없이는 정말 하루도 지탱하지 못하는 우리이기에 간구하고 기도하며 살아야 한다.

나도 엄청난 시련이 엎치고 덮쳤을 때를 돌아보면 그 뒤에는 나를 위한 예상 밖의 도움이 있었음은 물론 오늘도 이러한 기적의 연속으로 가정과 사업, 삶 전체를 이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