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는몰라 밖에서 짖으면서 뛰는데 유리창과 마루 그리고 벽에 핏자국이 묻어 있었다.  자세히 보니까 발을 다쳐서 피가 계속 흐르고 있었다. 피가 흐르는 발에 반창고를 붙여 주었더니 금방 떼어내고 피를 흘리면서 걷기에 피를 콘크리트바닥에 뭍히고 다닌다.  일이 있은 얼마 읽던 신문기사 요즘에 미국 적십자사에서 헌혈량이 예상보다 미달이라서 비상이 걸렸다는 것이다.  며칠 일이 문득 생각이 나면서 개의 피를 필터(filter) 여과하고 수정하여 사람들에게 수혈을 하는 방법을 찾지 할까? 라는 질문을 보았다. 달에 사람도 보내고 짐승은 물론 복제 인간까지도 만들 있는다는 현대문명의 과학기술을 동원해서 필요한 피를 만들면 텐데

 

전문지식도 아니고 그저 일반상식 수준의 책만 읽어봐도 인간에게 개나 짐승의 피를 수혈할 없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인간에게 수혈할 있는 피는 당연히 인간에게서 나와야 된다.  아마도 우리 인간이 잘못을 해서 받을 죄를 대신해서 흘리는 피도 구약시대에는 개를 사용했다고는 나오지 않으나 비둘기, 혹은 등등 짐승의 피로 대속 하다가 신약시대에 와서는 최선의 대속물은 당연히 인간의 , 예수의 피로 말미암아 온전한 속죄 제사가 이루어진 것도 어렴풋이 이해가 된다.

 

인간의 피는 오직 인간에게서만 오는 깊은 이치를 되새기다 경험했던 충격적인 사건이 기억난다. 

 

내가 19 되기 직전에 돌아가신 아버님께서 미국 스텐포드 대학병원에 거의 6개월 입원해 계실 때였다. 처음에 나쁜 간염 증세로 피를 많이 토하시고 입원을 하시고 30 리터의 수혈을 받고서 수술을 끝내신 잠시 회복의 희망이 있을 때였다. 아버님이 침상에서 나를 부르시더니 유언은 아니면서도 비슷한 내용을 틴에이저 아들에게 부탁하셨다. 본인이 같으니가능하면 백인들에게서 받은 아들인 나와 당신의 , 여동생이 사회에 돌려 주었으면”: 한다고.  지금 생각하면 이북에서 혈연단신 내려오신 개성 분이신 아버님다운 부탁이었다.

 

아버님이 돌아가신 15년간은 정기적으로 헌혈을 했다. 나름대로 세운 목표는 내가 죽기 100번의 헌혈이었다. 간호사가 여동생도 기회가 있을 때마다 헌혈을 한다.  

 

거의 5-60 차례의 현혈을 했을 때였다. 날도 적십자사 건물 위치를 지나가다 무작정 들러서 헌혈을 한다.  항상 하는 대로 간호사가 혈압을 재고 기본 준비를 거친 팔에 바늘을 꽂아 나는 열심히 손을 쥐었다 놨다 하면서 피를 뽑는 대화를 걸어 온다. 이름이 특이하다고사실 영어로 “YI” 라는 성은 당연히 한국 사람 외에는 없는 것이기에 설명을 주었다. 나는 한국에서 태어나고 거기서 자라서 이민자라고내가 덧붙여캘리포니아에 사는 사람이 어떻게 한국 사람의 흔한 이름을 모르냐?” 간호사의 대답이 바로 나에게 충격적인 것이었다. “여기에서 근무한지 년이 되지만 한국사람은 아마도 네가 처음…”이라 하는 것이었다.   아니 무슨 소리를 하는지. “나만 해도 3개월에 한번쯤은 꼬박꼬박 들어오는데 우리 한국사람이 동네에 최소한 수만 명이 사는데 무슨 소리냐?” 다시 물어봤다.  대답은 같았다 – “한국 사람은 기억이 없어요”…

 

의아하고 믿지 못해서 주위에 어른들에게 물어보았더니, 대답들이 간호사가 말을 검증시켜 주었다. 이것을 바꾸어 보려고 우리 교회 주최로 헌혈차를 교회로 부르기로 하고 교회에서 헌혈 분들의 명단을 만들었다.  적십자사 규정상 최소한 20명의 헌혈자가 있어야 온다때문에 계획은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내가 가지고 있는 사업체에서 직원 입사 요구 조건 헌혈을 권장한다. 언제부터 인지 모르나 시작한 입사 조건이 아주 예상 초월의 결과를 가져왔다.  직원 자신이 헌혈을 하더니만 자기 교회에 헌혈사역을 시작해서 또래의 교인들을 그룹으로 몰고 가서 헌혈을 한단다.  그래도 한인 2세들은 소망이 보인다. 쓸데없는 미신도 아니고 유교사상도 아닌데 무조건 헌혈을 반대하는 우리 한인 1 보다는 얼마나 귀중한가? 

 

인간의 피는 인간의 피로써만이 보충할 있다. 아무리 색깔이 똑같고 눈으로는 분간할 없는 피를 인간에게 수혈하면 큰일이 일어난다.  마찬가지로 우리 인간의 죄는 예수의 보혈로만이 씻길 있는 것이다.  억지로 대용품을 써서 좋은 행실, 품위 있는 , 우아한 행동으로써 그럴싸하게 다른 사람의 눈을 속일 수는 있어도 막바지에는 예수의 보혈이 있어야 되는 것이다. 절대로 대용품은 허락할 없다.

 

피는 생명이다.  생명을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 주는 경험을 하려면 전도가 적격이다. 예수의 보혈로 수혈을 받아서 살아난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도 이것을 전할 있다. 영적 행위인 전도도 열심히 하여야 되겠지만 생명을 나누어주는 신약성경 야고보서에서 가르치는 물리적 전도 헌혈도 몸소 경험했으면 멋있겠다.  다시는한국 사람은 처음이에요이라는 말을 듣고 싶지 않다.

 

우리 모두가 정기적으로 혹은 버릇으로 헌혈을 했으면 얼마나 좋을까?  자주 못하겠으면 최소한 부활절을 전후로 해보는 것도 또한 좋은 경험이다.  커다란 못이 예수님의 팔에 박히는 아픔을 대신해서 아주 가느다란 바늘이 우리의 피부를 뚫어 생명을 밖으로 내놓고 그것을 통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생명을 나누어주는 …. 아주 의미심장한 습관을 우리 한인1 예수쟁이들도 가져 보기를 도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