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 방귀

 

새 식구 몰라를 입양 하는 과정 중 주위 사람들이 주의를 한 가지 준다. 순종개들에게 단점이 꼭 있는데 이것은 알고 있으라고 그래야만 나중에 후회가 없다고. 랩 종자인 몰라 10-14년 정도 사는데 절반 정도를 살고 나면 엉덩이가 약해져서 수술을 해주는 경우가 종종 있다는 것이다. 경비는 수 천불에 이른다고. 이 말을 듣고는 주춤했다.  조금 더 전문가들에게 물어보고 책도 찾아보고 해서 결정을 내린 것이 랩 종자들이 엉덩이뼈가 약한 것은 사실이나 모든 개들이 그런 것이 아니다는 쪽으로 치우쳤다.  이것을 찾는 동안 책과 다른 개 주인을 통해서 어느 특정 종자는 심장이 나쁘고, 어느 종자는 천식이 있고, 어느 종자는 눈병이 항상 나고 등등 배운다.  이때 재미있게 프랑스 프들(French Poodle)에게 있는 아주 좋지 않는 버릇이 있다고 들었다. 곱슬머리에 매달 미장원에 가서 털을 깎아야 제 모양이 나는 이 종자의 개들 중 특히 몸집이 큰 개들은 밥을 먹고 나서는 꼭 방귀를 뀐다는 것이다.

매일 몇 시간 정도는 집안에 들어와서 식구들과 같이 TV도 보고 또 아이들이 공부하는 시간에는 그저 옆에 누워있는 몰라에게 가끔 큰아들 주형이와 내가 장난을 건다. 바로 그의 코 앞에 가서 방귀를 뀌고 개가 어떻게 하나 관찰을 한다. 전혀 상관을 안 하기에 재미가 없어 이런 장난도 요즘에는 없어졌다.  그런데 얼마 전 오랜만에 주말을 집에서 보내면서 몰라와 내가 대낮에 낮잠을 자고 있었다. 딸과 아내의 말에 의하면 나와 개가 코를 고는 소리가 아주 똑같다고 한다, 집 앞에 문이 열리는 소리에 내가 먼저 깨서 정신을 차리고 아직도 꿈을 꾸면서 자는지 코를 골면서도 얼굴 표정이 실룩실룩 바꾸는 몰라를 자세히 쳐다보고 있었다.  갑자기 열심히 자던 몰라가 방귀를 뿡우웅…”하고는 크게 뀌었다.  자신의 방귀에 놀란 몰라는 벌떡 일어나가지고 겸연쩍은지 왕왕 짖어대며 집 밖에 나가서 한 바퀴 돌고 들어 온다.  이것을 본 나는 혼자 실컷 웃은 다음 몰라에게 말한다 ! 주인을 어느 정도 닮아야지 어떻게 코고는 것과 자면서 방귀 뀌는 것을 닮냐? 이 방귀 뀌는 개가 더 귀여워진다.

 

수 년 전 우리 교회 영어부에 있는 목사님을 포함한 많은 교인들 사이에 내가 제시한 방귀 신학론 (Fart Theology)란 개똥 이론을 가지고 한 동안 여러 차례에 걸쳐 찬반론과 경험담 그리고 이 이론의 신빙성 등을 가지고 비공식적으로 토론회를 가졌다.

 

한국 속담에 열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 그러니 누가 친구인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이 소제를 가지고 여러가지의 방법을 토론하였다. 나온 대답 중;

서로 알고 지낸 기간이 최소한 일년.

서로 같은 학교 출신 특히 고등학교.

서로 같은 취미 생활 바둑, 낚시, 골프.

서로의 사주 팔자가 맞으면.

서로의 나이가 2-3 년 차이 내.

서로의 고향이 같아야.

서로가 술에 취해 보아야.

서로가 돈을 꾸어줄 수 있어야.

서로의 숙제와 시험을 컨닝그 할 때

서로를 위해 목숨을 줄 수 있을 때 등 이렇게 천태만상의 여러가지 방법이 나왔지만 아주 정확한 해답이 아니었다. 당시 내가 내어 놓은 이론 어떻게 두 사람이 친한 사이인지 증명을 할 수 있는 방법 제시 가 바로 방귀론의 시작이었다.

 

정답이라 할 수도 없고 확실한 통계도 없지만 그저 많은 사람들이 내 답을 듣고는 동의를 했기에 또 하도 나 같은 사람에게서나 나올 수 있는 답이기에 교회 영어부 교인들 간에 몇 차례에 걸처 대화의 대상이 되었고 한 동안 이 이론을 증명 해보려는 청소년간에 노력도 있었다.

 

방귀론을 설명하자면 특히 우리 동방예의지국인 한국의 풍습에 좀 어긋나는 점이 있기에 조심히 해야한다.  교회 자매님들 중에는 나에 대한 이미지가 사냥꾼에 낚시꾼 또는 아주 저질 매너를 가진 괴짜이기에 좀 조심 그렇다고 언제 남의 눈치를 보는 본인이 아니기에.

 

부부 간에도 적용되고 친구 간에도 적용되며 목사님과 신도 간에도 적용 될 수 있는 이 방귀론에 의하면, 서로의 앞에서 방귀를 뀌어도 특별히 미안한 감도 없고 그저 냄새만 특별히 독하지 않고 그 소리가 아주 지저분한 물 속에서 방귀 뀌는 소리만 안 나면 관심도 없이 지나갈 수 있는 관계이면 이것은 상당히 발전된 관계라는 것이다.  이 방귀라는 것은 조물주가 우리를 만들 때 자동적으로 몸에서 생기는 이질 가스를 배출하게 만들었는데 이것을 억지로 참는다는 것은 오로지 체면 때문 아닌가 한다. 일부러 방귀를 장소와 때를 가리지 않고 소리내며 뀌고 다니는 것에는 문제가 될지 몰라도 사실 특별히 창피한 것과 더러운 것도 없는 것이다. 누구나 다 하는 자연현상인데.

 

애를 출산한 엄마나 수술을 하고 난 환자들에게는 방귀를 뀌는 것 자체가 완쾌 되어가는 과정이라 들었다.  이와 같이 친구간에 혹은 부부간에 부담 없이 방귀를 뀔 수 있다는 것은 그들 간의 사이가 원만한 사이가 되어가는 과정이라 볼 수 있다. 한치 속도 들여다 볼 수 없는 사람의 마음을 밖으로 표현하기 힘들지만 각자의 행동과 언사로서 얼마든지 간접적으로 나타내는 것이다. 방귀를 뀐다는 것은 마음을 펼 준비가 됐다는 것이다.

 

마음대로 뿡뿡 방귀를 뀌어도 되는 친구들이 옆에 있고, 주위 사람들이 방귀를 뀔 수 있는 것도 감사한 일이다. 개까지도 막 뀌어대는 방귀소리에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