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 쫓는 개

우리 집에는 지난 10여 년간 암탉을 기른다. 달걀을 받아먹는 실이익도 있거니와 닭들과 우리집 개 ‘몰라’가 어울리는 것을 보는 재미로 키운다. 보통 닭들이 아니고 달걀이 초록색, 하늘색, 핑크색 등을 내는 좀 특이한 닭들이다. 여기에 조금 더 색다른 닭을 구하려고 닭의 털깃이 없고 그냥 솜털만 나는 덩치 큰 병아리 같은 닭을 사육사에게 부탁했다. 이런 닭이나 병아리가 들어오면 연락을 해달라고. 마침 왈라파이를 다녀오는 길에 연락이 왔다. 얼른 계획을 조정해서 길로이로 닭을 데리러 갔다. 사육장에 기다리는데 닭장 바로 옆에 낮은 울타리를 두른 오리 사육장이 있었다.

얼마 전 CBMC를 통해서 사귀게 된 양승훈 교수가 쓴 책 ‘물에 빠져 죽은 오리’를 읽은 기억이 나면서 집 뒤뜰에 어차피 땅도 있고 오리가 살만한 웅덩이도 있고해서 두 번 생각하지 않고 오리를 구입했다. 주인에게 물어보니 울타리가 1 미터 높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자세히 설명을 해 준다. 집에 돌아와서 뒷뜰에다 닭과 오리를 풀어놨다. 예상대로 닭들은 다른 닭들이 사는 닭장 안으로 들어가서 열심히 땅에 흩어져있는 모이를 쪼아댄다. 반면에 오리는 닭장에 들어가는 것이 좀 이상한지 혼자 뒤뚱뒤뚱 열심히 걸어서 뒷마당을 돌아본다. 짐도 챙길 사이없이 교회에 모임이 있어서 나갔다. 몇 시간이 지난 후, 해도 지고 어두워지기에 차남 태형이에게 전화를 했다. 뒷뜰에 있는 닭과 오리를 잘 우리에 몰아 넣으라고. 조금 있다가 태형이에게 전화가 왔다. 오리가 높은 담 위에 올라가서 내려오지를 않는다고.

저녁 늦게 집에 돌아와서 플래시 라이트를 가지고 뒷뜰에 나가 보았다. 아직도 오리는 3미터 높이의 울타리에 올라 앉아있었다. 그래서 길다란 막대기로 툭툭쳐서 오리를 다시 땅에 내려 놓았다. 그리고 막대기로 천천히 몰아가는데 나르려고 날개를 퍼덕거려도 겨우 1미터도 못 나르고 그냥 뒤뚱뒤뚱 걷는다. 이때 까지 전혀 관심을 갖지 않고 자신의 집에 콕 박혀있던 ‘몰라’가 짖으면서 달려 온다. 오리는 아마도 처음보는 개일지도 모르지만 우선을 살짝 피한다. 그런데 ‘몰라’가 점점 오리에게 다가가서 냄새도 맡고 툭툭 건드려보기도 한다. 아마도 별 문제가 될 것 같지 않아서 나는 짐승들을 뒷마당에 내버려두고 잠을 자러 들어가려는 찰라, 갑자기 ‘몰라’ 막 짖어대기 시작을 하지 않는가. ‘몰라’가 다른 짐승과 집에다 두고 다녀도, 장난삼아 건드려 보기는해도 절대로 해치지는 않는다. 이번도 ‘몰라’가 그냥 폼잡고 짖어댄 것이다. 이러한 ‘몰라’의 행동이 익숙한 나에게는 별로 특별한 일이 아닌데 우리 집에 처음 온 오리에게는 아주 겁나는 일이었다. 얼마 전까지는 1미터도 못 뛰는 오리가 3미터 높이의 담 위로 휙 날아오른 것이다. 막대기로 건드려서 내려보려는데 절대로 내려오지를 않는다.

그냥 놔둬도 괜찮을것 같기에 들어가서 자고 다음날 아침에 나와 보니 오리는 온데간데 없이 ‘몰라’만 뛰어 다니고 있었다. 담 너머로 옆에 학교 마당과 이웃집들을 찾아 보았으나 헛수고였다. 그저 온전하게 어느 집 뒤뜰에 있든지 잘 있기를 바라면서 오리 찾기를 포기했다.

분명히 사육사가 “1미터 정도의 울타리면 충분하다”는 말을 되새기며 다시 한번 양 교수의 책 ‘물에 빠져 죽은 오리’를 읽는다. 내용은 아무리 수영을 잘하는 오리지만 엄마에게서 수영 훈련을 받지 않았을 경우 물에 빠질 수가 있다는 것이다. 또한 털도 원래 물이 묻으면 미끄럼틀 탄 듯 흘러내리게 되어있지만 집에서 엄마 없이 자란 오리의 털은 물에 젖는다고 한다. 마찬가지로 야생오리는 얼마든지 날아다닐 수 있지만 집에서 기르기 시작한 오리는 날아다닐 필요가 없기에 그냥 걸어다니다고 한다. 오랫동안 이런 환경에 살면서 날개의 필요는 점점 없어지고 진화의 반대인 퇴화현상이 일어난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이런 상황을 반증하는 경우는 갑자기 처음으로 보는 개가 막 짖으면서 달려올 때 위기를 느끼면서 본능적으로 날개질을 하고 여직껏 1미터도 못오르던 오리가 갑자기 3미터 높이의 담 위를 뛰어(날아) 오르는 것이다. 또한 필요에 따라서 더 멀리 날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사냥꾼들에게 들었는데 야생 멧돼지를 집에서 기를 수 있는 돼지로 만드는데 최소한 수십 년의 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그런데 집돼지를 야생에 풀어 놓아서 자신들이 직접 방어하고 각자 먹고 살게 환경을 바꾸면 2년 만에 흐느적하던 귀를 쫑긋세우고, 꼬불꼬불하던 꼬리가 일직선으로 꼿꼿이 서고, 제일 중요한 날카로운 공격용 이빨(Tusk)이 나오기 시작한다.

오리든 돼지든 그냥 남이 주는 음식만 먹고 살고 전혀 자신의 신변에 위험이 없을 때에는 생존경쟁에 있어서 퇴화를 한다. 그런데 만약 위기의식이 작용이 되면 순식간에 자신도 모르는 본능이 다시 살아나서 평상시 상상도 못하든 괴력을 발할 수 있다. 이러한 퇴화현상과 원상복귀의 현상은 짐승들에게 만 적용 되는 것이 아니고 우리 인간에게도 적용이 된다. 한발짝 더 나아가, 물리적인 현상은 물론이고, 영적인 상황에서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다.

즉 아무런 변화가 없는 상황에서 안위하게 믿음 생활을 할 때는 퇴화작용이 일어난다. 이 상태가 오랫동안 유지될 때는 창조 때 우리 인간에게 주어진 분별력이나 창의력, 그 외에 담대함 등이 점차 감소되어서 막바지에 이르러서는 아주 무능력한 영적 존재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창조주는 인간을 만들어서 코에다 생명을 불어 넣을 때 포함한 것이 바로 위기 때 원상복귀의 능력과 원초본능의 반사적 행동인 것이다. 이런 자연법칙을 감안할 때 어쩌면 우리가 가끔 당하는 영적 혹은 재정적의 위태로운 상황이 꼭 시험이라고 부정적으로 볼 것이 아니고 전능의 조물주가 우리의 숨은 능력을 되찾게 하기 위하여 허락하는 특별훈련이라고 긍정적으로 풀어볼 수 있다.

오리 쫓는 개 - ‘몰라’는 해칠려고 크게 짖으며 쫓은 것은 아니지만 결과는 그 오리로 하여금 전혀 자신도 모르는 방어 능력을 행사하며 날아다니는 오리를 만들어냈다. 아마도 우리가 무서워하며 피하려는 시험도 최소한 우리 자신도 모르는 잠재 의식과 능력을 깨우치고 그것을 극복하는 기회를 선사해 주는, 위에서 내려오는 선물이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