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 졸업식

 

친구네 사무실 책상 위에 개 졸업식 때 찍은 사진과 졸업장을 액자에 넣어 예쁘게 장식되어 놓여있다.  우리 개 몰라도 개 학교를 졸업은 했지만 거창한 식은 없었다.  내 자신의 졸업식도 특별한 행사나 축제없이 가족끼리 모여서 저녁식사나 하고 사진찍고 정도였으니 개의 졸업식 사진이 없는 것도 당연하다.

 

미국에 오기 직전 30여 년 전에 육촌 형님의 고등학교 졸업식에 참석하게 되었는데 정말 가관이었다. 검은 교복을 입은 졸업생들이 밀가루를 뒤집어 쓰고 난리를 치는데 꼭 미친 사람들 같았다.  아버지께, 왜 이렇게 소란스럽느냐?고 물어보니 대답이 그 힘든 고등학교 공부를 마치고 그 기쁨에 대한 표현이란다.  나중에 안 것이지만 이 졸업식날의 다음 단계는 술집에 몰려가서 한잔 꺾고 찐하게 밤을 새며 놀았다고들 한다.

 

한국어로는 간단하게 졸업식이라는 이 행사가 영어로는 보통 두 개의 단어로 표현한다. 보통 초, , 고등학교 수준에서는Graduation Ceremony라고 부르는 파티와 같은 계열의 행사이고, 수준이 높아진 대학과 대학원 과정에서는 이 졸업식을 Commencement Ceremony라고 부르는 원칙적으로 차원이 다른 행사를 한다.

 

진정한 의미의 졸업식은 무엇인가? 단지 과정을 거쳤다고 남 앞에서 폼잡기 위한 행사인가? 친구에게 물어본다. 개가 졸업하기 전과 졸업 후에 달라진것이 있냐?, 대답은 예상했던 대로 전혀 아니. 그저 재미로 보낸 학교니 뭘 바라겠나. 우리 개 몰라도 당연히 학교에서 배운 것 모두 까먹고 겨우 한 두마디만 알아 듣는다.

 

내 직원을 뽑고 또 그의 월급을 정할 때 대학 졸업자는 당연히 많이 받는다. 나의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각자의 실력 차이가 졸업장에 의해서 비교되는 것은 결코 아니나 그래도 대학을 졸업했다는 그 과정상 최소한의 나름대로 시간관리와 또 자신관리가 익숙하다는 것에 임의의 차이를 둔다. 대학졸업 과정을 거친 사람은 최소한 필요에 따라서 당장은 몰라도 정답을 찾을 줄 아는 사람들이라 믿고 맡긴다.

 

다시 졸업식 단어로 돌아가자.  Graduation 이라 함은 우리 한국 문화에 아주 익숙한 단어이다. 특히 교회에서 졸업이란 단어는 꼭 구원 Born Again과 흡사하다. 처음에는 아무 것도 모르고 그저 친구 따라서 교회에 오고 또 조금 시간이 지나니까 아는 사람도 생기고. 미국에 있는 한인 교인들은 교회라도 나가야 한국인을 만나고 한국 음식도 나누어 먹고 등등. 시간이 흐름에 따라 성경도 조금 읽게 되고 또 하도 목사님이 귀찮게 성경공부반에 들어가라고 해서 가뭄에 콩 나듯이 가끔 성경 공부도 한다. 그러다가 어떤 기회에 부흥회라는 것을 참석했는데 강사 목사님이 머리에다 철썩철썩 손을 내리치면서 안수기도라는 것을 받으며 갑자기 몽롱해지면 입으로 막 헛소리 같은 방언이라는 것이 터져 나오는 이 순간이 바로 많은 분들이 말하는 성령이 임하여 구원 받고 다시 태어나는 순간이다. 전혀 하자가 없는 완전한 구원의 순간이다.

 

이 멋진 순간을 조금 더 발전시키면,  졸업식이 단순히 Graduation을 넘어서 Commencement이 될 때가 있다. 이 단어를 영한사전에서 찾아보면 시작, 개시 Beginning이란 단어가 된다. 다시 말해서 수준이 높은 졸업식은 마침이 아니고 시작이란 단어이다. 대학에서의 졸업식 의미는 앞으로 다가 올 모든 삶의 문제에 대처하며 차원 높은 연구를 시작한다는 뜻을 포함 한다. 기독교적 관점에서 볼 때에는 구원 Sanctification 이 되는 것이다. 성화 즉 성인이 되어가는 구원의 과정을 말한다. 수양회를 통해서이든지 혹은 부흥회를 통해서이든지 아니면 철저한 성경공부를 통해서이든지 구원을 받았다는 것은 교회생활을 터득했다는 것 보다는 한 수 높은 성서적인 삶을 시작한다는 의미가 담겨있다. , 내가 매일 매일 맞이하는 결정적인 순간에 나의 이익만이 아니고, 나의 체면이 먼저가 아니고 WWJD What Would Jesus Do 예수가 지금 내 입장에 있다면 어떻게 결정하실까?가 되는 것이다.

 

많고 좋은 기독교인들이 구원을 한번 얻었다고 (절대로 다시 잃어버리지 못하는 구원이기에) 이제는 막 살아도 되는 지 엉망진창으로 산다. 여기에다 성경좀 읽었다는 분은 한술 더 떠서 구원은 믿음이지 행실이 아님하며 성경 구절을 들이댄다. 이런 분들을 위해서 같은 성경에 몇 가지 더 적혀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즉 우리의 행실로는 구원을 못 받지만 매일 매일 행하는 이 행실이 바로 구원 받은자의 증거물이라고. 다시 말해서 행실로 나타나지 않는 믿음은 아마도 자기 자신까지도 완전하게 속인 가짜 구원일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때문에 아무리 힘들고, 고되고 억지로라도 올바르고 성서적인 행실로 옮겨져야만이 진정한 구원이라고 할 수 있다. 성경에서는 이 과정을 구원을 완성시키는 것이라 표현한다.

 

많이 들었을 것이다 하나님과 예수는 아무의 눈에도 보이지 않는다. 마찬 가지로 구원과 믿음도 사실 물리적 눈으로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어떻게 어둠의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예수를 믿으며 만질 수 없고 맛볼 수 없는 구원을 갈망하겠는가? 여기에 정답은 이미 예수를 믿는 사람은 볼 수 있고, 그 사람의 행실을 봄으로써 예수를 만날 수 있는 것이다.

 

너무 흔한 졸업식 Graduation 종강() 파티 스타일의 구원이 아닌 매일 새롭게 시작하는 Commencement 스타일의 성화되가는 구원을 가져야겠다.

 

개 학교를 대충 졸업한 몰라를 앞으로 집에서 다시 가르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