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몰라”요 개

이 세상에서 가장 꼴불견(개?)이 있다. 바로 아무 것도 모르면서 잘난체하는 사람들이다. 이렇게 말하는 나 자신도 이축에 끼는 꼴불견 중에 하나임이 확실하다. 때와 장소도 못 가리고 기회만 있으면 그냥 떠드는 것이 좋아서 아는 것 모르는 것을 다 동원해서 지껄이다 보면 얼마 전에 한말 되풀이하고, 심한 경우에는 전에 한말도 기억을 제대로 못해서 엉뚱한 말을 지껄이기도 한다. 반면에 현명한 사람은 사실 알면서도 나서지 않고 뒤에 조용히 있으면서도 때가 되면 슬쩍 말 한마디 정답으로 해결해주는 사람들이다.

내가 기르는 개의 이름을 “몰라(Mola)”라고 지어놓은 것은 특별한 이유 없이 그냥 전 주인이 지어준 이름 “롤라(Lola)” 라는 이름이 발음하기 어려워서 슬쩍 바꿔놓은 것이다. 그런데 이름에 따라서 개가 자신을 맞추는지 아주 모르는 개처럼 보인다. 그러면서 본능에 따라 행동을 할 때 보면 아주 똑똑한 개가 확실하다.

여러 가지 개와 관련된 수필을 “몰라”의 이름과 그의 행동을 빙자해서 써 놓은 글을 대충 모아서 출판은 아니고 그냥 간단한 수필집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남들이 크리스마스 카드를 주고받는 시기에 나는 이 책을 카드 대신에 500여 권 주위 사람들께 나누어 드렸다. 그 중에 책 한 권이 큰 처형 손에 들어갔는데 다음날 아내를 통해서 한마디 들었다. 다름이 아니고 “나는 ‘몰라’요”라는 문장은 자신의 엄마, 즉 내 장모님이 돌아가시기 직전까지도 항시 되풀이 하셨던 말씀인데 내가 가족들 허락도 없이 도용했다고. 돌이켜 생각을 하니 정말 그분은 막내 사위인 나와 수년을 같은 집에 사시면서 시시때때로 사용하셨었다. 어쩐지 “몰라의 외침”을 대충 엮다가 표지에 눈에 띄는 문장이 있어야 할 것 같아 몇 초 만에 머리에 떠오른 아주 귀에 익은 문장이었다.

이 문장이 오래 전에 돌아가신 장모님이 즐겨 쓰시던 문장이라 생각을 하니 갑자기 그분의 인품과 몸소 보여주신 가르침이 생각난다. 삼일절이 난 기미년에 함경도에서 태어나셔서 일찌감치 결혼을 하시고 10명의 자녀들 중 처음 몇은 6.25 동란이 있기 전에 나셨기에 남한으로 내려 오시면서 하신 고생은 말할 것도 없다. 또한 휴전을 전후해서 아들 둘을 사고로 잃으시는 아픔을 겪으셨다. 그리고 함경도시절부터 사업을 하시던 남편을 뒷바라지하시며 정말로 힘겹게 사셨다. 이 분이 막내인 내 아내와 같이 몇 년 사실 때 질문을 하면 “나는 몰라요 – 맘대로 하세요”라고 대답하셨다. 처음에는 장모님이 무조건 말하기 싫으셔서 인가 하기도 했고, 심하게는 하도 자식들이 고집을 피우니까 귀찮아서 이처럼 무책임한 대답을 하시나 했다. 그런데 기회가 주어져서 장모님에게 슬쩍 “장모님, 그냥 모른다고 하지 마시고, 정말 어떻게 생각하세요?”라고 떠봤다. 조용히 들려주시는 그분의 대답은 아마도 성경 어디엔가 기록이 돼있을 만도 한 정도의 고차원 대답이었다. 대충 정리를 해보면 이렇다.

어차피 의견을 물어보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대충 자기들의 의도가 벌써 정리되었고 물어보는 이유는 솔직히 예의상 그리고 사실 따라서 하려는 것보다는 아마도 자신의 방법으로 이끌어가기 위한 설득의 첫걸음이란다. 때문에 정 틀린 길이 아니면 서로의 마찰을 줄이고 그냥 따라가 주는 것도 삶의 지혜라고. 그리고 오히려 물어보는 사람이 먼저 자신의 계획을 내어놓으면 그때에 가서 한마디로 정정해주는 뒷자리 운전사, 즉 뒷자리에 앉아서 지시하는 사장식이 더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또한 요즘 세대에 너무나 아는 체하는 사람들이나 제자들 혹은 자식들 앞에서 “나는 몰라요” 라고 솔직히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내 경험만 들춰봐도 좀 배운 분들은 제자인 나에게 “난 몰라” 라고 솔직하게 말씀하신 분들이다. 자신이 모든 것에 만물박사처럼 행세하는 사람, 특히 컴퓨터쟁이인 내 앞에서 컴퓨터가 이러니저러니 하시는 분들에게 새로이 깊은 것을 배운 기억은 없다.

장모님께서 돌아 가신지 벌써 오랜 시간이 지나다 보니 가물가물해지는 나의 기억력을 더 이상 믿을 수 없으니 하루라도 빨리 그분이 즐겨 쓰시던 “나는 몰라요” 의 삶의 지혜를 내 자신도 생활에 적용하고, 내 자식들에게도 전수해 주어야겠다. 그리고 이러한 가르침을 알게 모르게 벌써부터 터득하신 교회의 노인 어른들에게도 다시 한번 배우는 자세로 대해야겠다.

특히 내가 지금 참석하는 산호제 한인침례교회는 50세도 청년으로 보이는 아주 노령의 교회이다. 평균연령이 족히 60세 정도되는 노인어른들이 많은 교회다 보니 8282 움직이고 후딱후딱 해치워야 하는 일들을 할 때는 아주 답답하지만 오히려 깊은 이해가 필요하고 천천히 그리고 숨을 가다듬으면서 해도 상관없는 사역을 하기에는 아주 맞춤교회이다. 이러한 배경을 잘 살려서 “나는 몰라요” 하면서 뒤로 살짝 빠져주시는 노인 어르신네들의 지혜와 경험을 바탕으로 특출한 사역을 펼쳐볼 만도 하다. 이런 겸손의 극치를 이루신 분들에게 배우는 것도 상당히 많을 것이다. 특히 미국에서 태어나서 한국 문화의 전부를 기껏 비디오를 통해서 배운 2세들도 “난 몰라요”를 통해서 배울 점들이 있다. 워낙 한국 풍습과 유태인 풍습이 유사한 것이 많다 보니 한국 문화(유대사상을 포함한)을 잘 배우면 덩달아서 성경에서 장려하는 좋은 문화도 덤으로 배울 수 있는 것이다.

“나는 몰라요” 책 앞장에 자리 채우려던 문장이, 싱겁게 웃는 얼굴의 우리 “몰라” 에게도 배울 것이 있고, 무의미하게 듣던 “나는 몰라요” 문장을 통해서 장모님의 지혜를 되새겨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