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약 먹은 개

내가 기르는 ‘몰라’는 꽤 똑똑하고 아주 순종 잘하는 래바도이다. 그런데 주인을 잘못 만나서 훈련을 제대로 받지 못해서 이름 그대로 정말 아무 것도 모르는 ‘몰라’가 되어버렸다. 그래도 순종 개의 값어치를 하려는 것인지, 본능에 의한 것인지 아니면 재수가 좋은 것인지 가끔 주위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해주는 재주가 있다.

가끔 TV나 영화에 보면 냉장고 손잡이에 수건을 감아놓은 문을 열고 주인에게 콜라나 맥주를 운반해 주는 개들을 본다. 이런 개들을 보면서 우리 ‘몰라’도 조금 더 훈련을 시켰을걸 한 적이 기억난다. 그런데 어느날 ‘몰라’가 닫혀진 문을 손잡이를 입으로 틀고 문을 여는 것을 목격하고 또 몇 번은 수건이 손잡이에 감기지도 않은 냉장고의 문을 열어서 냉동된 고기을 자신의 집에 옮겨 놓았다가 먹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커다란 유리문을 약간의 틈이 있으면 발을 사용하여 조금 더 열고 머리를 틀어박으면서 넓게 열고 집 안 출입을 하면서 자신이 원하는 음식을 부엌에서 몰래 훔쳐다 먹는다. ‘몰라’의 도적행위를 별로 야단을 치지않고 그저 귀엽게 봐주고 오히려 대견하게 보여서 슬쩍 넘어갔다.

우선은 왜 우리 집에 쥐약이 있어야만 하는가를 설명하는게 순서일 것 같다. 산호제 한복판에 살면서도 내 취미가 좀 특이하다보니 지난 십여 년 간 닭을 키운다. 지금은 5마리의 암닭에서 나오는 달걀로 우리 식구의 필요를 충당한다. 뒤뜰에 기르는 닭은 남미에 퍼져있는 아루카나라는 야생닭이다. 이들은 신기하게도 초록색, 하늘색, 핑크색 등의 알을 낳는다. 이 닭들에게 매일 모이를 주고 또 개도 방목 스타일로 기르다 보니 항상 개밥이 여기저기에 널려있다. 이러한 환경이니 온 동네의 쥐들이 우리집을 자신들의 집으로 삼는다. 때문에 일년에 한두 번은 쥐덪으로 잡는 것이 부족해서 쥐약을 풀어서 쥐들의 범람을 막아야 한다. 이때를 대비하여 항상 집에는 쥐약이 준비되어 있다.

그런데 지난 주에는 차고에 문을 열고 들어왔는지 아니면 내가 실수로 열어놓은 문을 통해서 들어왔는지 아무튼 선반 위에 있던 봉지를 들고 나가서 먹어버렸다. 문제는 이것이 그전 주에 구입해 온 쥐약이었던 것이다. 아침에 닭모이와 개밥을 주러 나갔다가 발기발기 찢어져 널려져 있는 쥐약 봉지를 보면서 내 가슴이 철렁 내려 앉았다. 부스러기 조금 남기고 모두 먹어버린 것이다. 한편으로는 쥐약을 개가 끌어 내릴 수 있게 낮은 곳에 놓은 내 자신을 책망하고 또 개가 문을 열고 훔쳐다 먹는 짓을 귀엽게만 봐 주던 것 또한 후회를 한다. 앞이 캄캄하여서 무슨 대책을 써야하나 정신이 없었다. 샴푸나 비눗물을 먹여서 토하게 해 볼까 생각하며 이것저것 막 헤매다가 언뜻 기억이 나는 것이 지난번에 구입한 쥐약이 다른 것에 비해서 비싼 것이었다. 그 이유는 다른 동물에게는 안전한 Pet Friendly한 쥐약이었던 것이었다. 그래도 혹시 통째로 먹었으니 걱정이 되면서도 안전하겠지 하면서 출근을 했다.

다른 날에 비해서 일찍 집에 돌아와서 제일 먼저 개를 부른다. 이게 웬일인가, 매일 껑충껑충 뛰어와서 막 짖어야 할 ‘몰라’가 안 보이는 것이었다. 다시 한번 나의 가슴은 땅속으로 꺼지는 것 같았다. 아이들에게는 뭐라고 변명을 해야하나? 또 아내에게도 “이 개는 애들 다 대학교 가고 졸업하고 올 때까지 기르자”고 수십 번도 이야기 했는데… 무거운 가슴을 안고 뒤뜰로 간다. 개집 앞에 가서 들여다 보니 이 개가 낮잠이 깊게 들어 아예 코를 씰룩거리며 자고 있는 것이었다. 다시 한 번 부르니 정신없이 뛰는 천방지축의 예전 모습이 얼마나 반가웠는지 꼭 껴안아 주었다. 저녁도 대충 먹고 개를 데리고 산책을 나갔는데 항상 하는 버릇대로 똥을 싼다. 똥 색깔이 쥐약 색깔이 되어서 나오는데 얼마나 반갑던지.

쥐약을 어떻게 만들었기에 쥐가 먹으면 죽고 개가 먹으면 괜찮은지 전문 지식이 없으니 설명은 할 수 없다. 아무리 그래도 쥐약도 약인데 약발이 전혀 개는 상하지 않고 똥으로 나온다는 것이 너무도 신기했다. 사실 한 봉지면 쥐를 적어도 10마리 이상 죽일 수 있는 분량인데. 정말로 약이 약 구실을 못한 것이 참으로 다행이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약이 약발을 발효하지 못하면 약 구실을 못하는 것이므로 비정상적인 것이다. 아마도 이런 약을 다시는 사용하지 않거나 아니면 약값을 돌려 달라고 난리를 칠 것이다. 만약 약에는 전혀 하자가 없을 때에는 아마도 복용하는 사람이 사용방법을 제대로 따르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다.

아무리 약을 먹거나 먹여도 효과가 전혀 없을 때에는 어떤 분은 적당량을 자신이 마음대로 늘릴 수도 있고 아니면 다른 약을 겸해서 먹을 수도 있다. 이러한 행동이 일반적인 약을 복용할 때에도 일어나지만 영적인 약을 먹을 때에도 일어나는 것을 목격한다. 이 약들을 부르기를 ‘구약’ 그리고 ‘신약’이라 부른다. 어떤 분에게는 이 약들을 복용을 하는데 아무런 효과를 보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특히 이 약을 장기 복용한 분들은 그저 버릇으로 매일 먹으면서도 별다른 효과도 기대하지 않는다.

과연 ‘구약’과 ‘신약’이 효능이 없는 위약효과(Placebo effect)를 멋있게 포장한 가짜인가? 아니면 이 약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는 겨우 가려운 귀를 긁어주는 정도의 얕은 설교 때문인가? 아니면 이 약이 아예 일부 사람들에게는 전혀 효능이 없게 만들어 진 것인가? 아마도 개개인 자신들은 알지 몰라도 절대로 남이 가르쳐 줄 수는 없는 애매한 이슈다.

그렇다면 나에게는 ‘구약’과 ‘신약’이 무슨 효과가 있나 짚어본다. 무엇인가 두렵고 자신이 없을 때에는 여호수아 1:9(구약), 무척 힘들 때에는 마태 11:28(신약) 등등 그래도 약효가 있다 – 정말 다행이다. 약이 전혀 안 듣는 병이면 불치의 병이라는데…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어떤 경우에는 약이 병을 고치는 것 외에도 예방 효과를 위한 처방일 수도 있다.

p.s. 쥐약을 먹은 ‘몰라’는 아주 건강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