끌어 모으는 개 (Pack Dog)

영어 단어 중에 Pack-Rat이란 단어가 있다. 이것은 쥐들이 집안에 돌아다니면서 별의별 쪼각을 다 주워다가 자기의 집에다 쌓아놓는 것을 표현하는 것이다. 이런 표현은 듣기만 했지 직접 본 경험이 없기에 그냥 지나 갔었는데 수 년 전에 아들 주형이와 함께 살던 집에 지붕을 수리하기 위해 뜯던 중에 진짜 쥐가 모아놓은 산더미같은 잡동사니 조각들을 목격했다. 여기에는 15년이 넘은 우표가 있었고 부러진 연필, 동전 몇 개, 타다가 만 성냥개비, 병 뚜껑 그 외에 과자 부스러기 등 왜 쥐들이 이것을 모았는지는 모르지만 희귀한 경험이었다.

새 집에 이사해서 기르는 개 ‘몰라’의 집을 뒷마당에 아주 크고 멋있게 지어주었다. 몇 개월 후에 개집을 청소해 주려고 방석과 담요 등의 잠자리를 끌어내는데 따라나오는 장난감, 플라스틱 포장지 등을 보니 ‘몰라’도 많이 주워다 모아놓은 것들이 나왔다. 또한 차고에 있는 냉동기에서 우리 몰래 열어서 얼은 고기와 음식들을 훔쳐서 쌓아 놓고 먹은 것이 발각이 됐다. ‘몰라’는 끌어모으는 개 즉 Pack-Dog이 된 것이다.

내가 미국에 왔던 1974년 때와 30여 년이 지난 오늘날과 미국은 많이 달라졌다. 그 중에 대표적인 것 하나가 임대 창고업(Self Storage)이다. 내가 사는 산호제만 해도 70년대에는 과수원이 여기저기 있었다.  그런데 이러한 과수원들이 하나 둘씩 없어지면서 쇼핑몰이 되고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면서 빈땅이 거의 없어졌는데 조금 남은 별 볼일 없는 빈땅에는 어김없이 임대창고들이 들어섰다.  조사를 해보니까 미국에 현재 43,000개의 임대용 창고가 10억 Sq Ft를 차지하고 이것을 임대해서 물건을 보관하는 비용이 매년 120억 달러가 소비된단다.  과연 이러한 창고에는 무엇이 보관돼 있을까?  내 자신이 한번도 사용을 해보지 않아서 확실하지는 않지만 아마도 집에 쌓아놓을 자리가 모자라기 때문에 창고를 임대 했을 것이다. 당연히 이용자 중에는 사업용으로 필요한 분도 계실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은 이사를 하면서 혹은 차고를 정리하면서 부지런히 모았던 재산이 차고 넘쳐서 할 수 없이 남들에게 나누어 주기는 싫다보니, 보관료를 주고 남의 창고라도 빌려서 내 것을 저장해야 되는 것이다.

미국에 현실은 어느 집이나 차고가 있다. 아파트 생활을 해도 차고들이 많이 있다. 본인을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차고의 일부 (나는 절반)를 창고로 사용한다.  여기에는 내가 꼭 필요해서 쌓아놓은 것도 있지만 솔직히 대부분은 구입할 때에는 내가 꼭 필요한 것 같아서 구입을 했지만 한 두번 사용해보니 과히 필요한 것은 아니고 사용가치는 없지만 버리기는 아까운 정도의 물건들인 것이다.  이것들이 쌓이고 쌓일수록 더 큰집으로 이사하고 싶고 (큰 집은 차고가 3개이니까), 큰집에 일단 들어가고 나면 이 집을 채워야 되고... 또 더 많아지면 더욱 큰집으로 이사를 해야하고.... 끝이 없는 나의 재력과 욕구의 경쟁이다.

사람들이 자신의 재력을 과시하기 위해 서로 견제를 하면서 묻는다. 톡 까놓고 “집이 몇 Sq Ft냐?”고는 못 묻고, 어느 지역에 살고 “집에 차고가 몇개” 인가를 슬쩍 물어본다. 자기와 비교해 보기 위함이다. 아니면 “방이나 화장실이 몇개냐?”고 슬며시 물어온다. 이것으로 속이 차지않으면 요즘에는 Flat Panel TV사이즈로 경쟁도 해보고, 혹은 아주 부자들은 집에 딸린 개인극장의 자릿수를 가지고 서로 겨누어본다. 나의 친구 몇은 뒷마당에있는 BBQ Grill의 넓이를 가지고 서로 자랑한다. 오늘날에 사람들은 자신의 자화상 혹은 자아의식이 얼마나 많이 재물이 쌓였나에 비례한다고 생각을 가졌기에 너무나 열심히 창고에 쌓는다. 이 창고에는 내 삶에 꼭 필요한 것들도 있지만 사실 전혀 필요없지만 남들에게 과시하기 위한 엉뚱한 목적의 물건들도 많이 쌓여있다.

예수님 시대에도 요즘의 사람과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있었나보다. 자신이 거두어 들인 곡식이 쌓을 곳이 없어서 창고를 늘리고 이것을 채우기 위해서 더욱더 열심히 일하는, 표면으로는 사실 아주 건실하고 효율적으로 사는 삶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다음에 나오는 내용이 현실을 직시하고 경종을 울려주는 말씀이다. 즉 언제 우리의 삶이 막을 내릴 줄 아는가? 아무리 잘 저축하고 아무리 많이 모아도 마지막에는 다 놓고 떠나야 하는 진리를 알아야 한다. 그리고 내가 남기고 가는 것에 대해서 조심하여야 할 것이 내 자식들 간에 서로 자기집으로 가지고 가려는 싸움에 근원이 될 수도 있다는 가능성 또한 배제할 수 없는 것이다.

영어로는 출장에서 돌아올 때나 퇴근할 때 사용되는 말이 “I’m going home.” 이다. 그런데 같은 말을 한국말로 “나 집에 간다”라는 표현을 직역을 할때 “I’m going to my house.”가 된다. 단순한 단어 차이로 볼 수도 있고 문화적 차이로 볼 수도 있다. 집에 정의를 내린다면 아마도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물건을 쌓을 수 있는곳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쌓아둘 필요한 물건 별로 없는 사람에게는 사실 집은 필요가 없는 것이다. 내가 출장때 필요한 것은 조그만 손가방 안에 다 들어간다. 그것 외에는 전혀 필요 없기에 내 호텔방에 걸어놓을 사진도, 테이블 위에 놓을 액자도 다 필요가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내일 혹은 아무리 길어도 며칠 후에는 떠나야 될 곳이기 때문이다.

내 인생이 앞으로 길어야 30년인데 아주 잠깐이면 스쳐갈 이곳에 그 무엇을 많이 쌓아 놓겠다고 커다란 집을 힘들여 구해야 하는지… 조물주를 뵈올 때 당연히 그 분은 나에게 잠시 맡겼던 모든 것에 대한 정산을 하실 것이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라는 칭찬을 받을지 “잡동사니나 모으고, 주인의 창고에서 슬쩍해서 잔뜩 모은 것을 쌓기 위해 큰집이나 열심히 만든 한심한 놈아…”라는 힐책을 받을지는 앞으로 내가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서 결정이 될 것 같다.

내 삶에 꼭 필요가 없는 것들은 다 버리고, 물건 쌓아놓는 집(House) 크기와 상관없이, 사랑하는 사람들과 모여 사는 가정(Home)을 이루는데 충성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