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 개

언젠가 손님의 오피스에 방문을 했을 때였다. 개 한 마리가 주인의 책상 옆에 누워있는데 너무 힘이 없어서 자신의 몸도 가누기지 못하고 있었다. 주인이 말하기를, 그것도 귓속말로 이야기를 해주는데 아직 이 개 자신은 모르지만 몇 주 내에 죽을 것이란다. 그런데 이 개를 안락사를 시키는 것을 꿈도 못 꿔봤고 그냥 사는 데까지 편하게 데리고 있다가 보내겠단다. 그것도 귓속말로 하는 것이 우리의 대화가 개의 귀속에 들어가는 것조차 조심한다. 개에게까지 그처럼 신경과 배려를 해주는 사람이 참 바보스러운 행동으로 보이면서도 한편으로는 매우 감동했다.

몇 주 후에 다른 손님을 찾아갔는데 북가주에서도 제일 큰 방역회사 중에 하나며 1927년에 창업하여 지금은 전국적으로도 좋은 회사로 소문난 Crane Pest Control 직원 중에 아주 늙은 직원이 하나 있었다. 내가 하는 사업이 소프트웨어를 만들어서 방역회사들의 모든 작업을 효율적으로 운영해서 최대한의 이익을 남기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전혀 효율은 고사하고 자신의 몸도 못 가누는 나이 70여 세의 직원, 그것도 컴퓨터도 제대로 작동하지 못해서 회사의 모든 수표를 컴퓨터로 처리하면 1분도 안 걸리고 할 일을 이 노인 직원은 1시간 이상 시간을 낭비하면서 수동작업을 하신다. 이러한 직원은 즉시 감원해 버려야 회사의 능률도 오르고 내가 제작하는 소프트웨어의 진가를 발휘할 수 있는데 사장은 전혀 딴청이다.

나중에 그 사장의 딸이 나에게 슬며시 설명을 해주는데 그 노인 직원은 지난 40여 년간 이 회사에서 몸담고 모든 과정을 사장과 같이 겪은 노장이라는 것이다. 이 분이 돈이 없어서 지금도 일을 하는 것도 아니고, 사실은 자식들도 없는 이 상황에서 양노원 신세를 지면서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이 안쓰러워 사장의 특명으로 이 노장이 일을 안 하겠다고 할 때까지 어느 누구도 시비 걸지 못하고 그 분의 책상에 연필 하나도 건드리지 말라는 지시가 있었다는 것이다. 정말로 자신의 직원을 끝까지 배려해 주는 사장이니까 전국적으로 존경 받는 회사가 되었으리라 이제야 짐작된다.

아내의 친척 이모가 계신데 이분은 어린 시절에 예수를 믿고 한국초기 서울 침례교회에서 주일학교 선생으로 계셨다. 당시 담임목사님으로 모시던 조 목사님을 조카인 내 아내가 수십 년 후에 미국에서, 산호제 한인침례교회에서 모시게 될 줄이야. 이모님이 돌아가실 때까지 교회를 섬기시며 근처 사택에서 생활을 하셨단다. 이런 노령의 신도가 교회에 얼마나 도움이 될까? 사실 교회 재정에 축만 내지 활발한 전도생활도 그렇고 그 나이에 누구를 가르치시겠나? 그러나 한때 이분이 헌신하신 그 마음을 기억하고 돌아가실 때까지 사택에 계시고 장례식에는 그분이 가르치셨던 많은 분들이 참석하여서 교회장으로 장례를 치루었다는 말을 전해 듣고 참으로 감격했다.

우리 한국 기독교 문화가 유교사상을 뛰어넘어 정말 고차원의 종교와 진실된 삶을 가르친다 하면서도 때에 따라 단순한 어른 공경도 제대로 못할 때가 있다. 그 예로 한때 교회에 커다란 도움을 주신 분들에게 대해서 시간이 지나면서 잊혀지는 너무나 소홀한 면을 보게 된다. 지금 미국에 계신 한인 목사님들이 당면한 가장 시급한 문제가 노년에 들게 되면서 은퇴 준비가 덜 된 상태에서 다음 세대 목회자들에게 자리를 내어 주려니 교회들의 준비가 너무 미비하다. 우선 빠듯한 교회의 재정을 빤히 알기에 넉넉한 월급을 요구 할 수도 없었고 그렇다고 몇몇 대형교회 목사들을 제외하고는 퇴직금도 없는 상태에서 은퇴 혹은 원로 목사로 호칭뿐이지 제대로 대우를 못한다. 그렇다고 무조건 이 교회 저 교회 다니면서 특강을 해서 생활비를 충당할 수도 없다 보니 암담한 상황에 이르게 된다. 다행히도 목사님이 자신의 자식들과 사이가 좋아서 도움을 받는 분들을 자주 본다. 그러나 일부 목사님들은 힘든 사역을 하면서 희생양이 되었던 자식들에게 의존하기도 뭐하기에 정말 힘들게 여생을 마치신다.

하다못해 늙은 개도 편안한 여생을 마치게 해주려고 하는 사람도 있고 자신의 부하직원에 노년도 미리 신경을 써주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영적으로 좀 세상을 이끌어 나가야 할 교회에서 자신들의 영혼을 먹이시고 또한 위해서 많은 시간을 드려서 간절한 중보기도며, 필요에 따라서는 상담도 해 주신 목사를 모르는 체할 때 참 밉다. 요즘 미국 경제는 물론 세계적으로 형편없이 힘들 때이다. 이런 때일수록 우리는 더 능동적으로 나의 선배와 스승들을 찾아보는 우리 동방예의지국의 사람들이 되면 어떠할까 한다. 한 발 더 나아가 동방예의지국의 예수쟁이로서 나를 키워준 스승은 물론 선배, 동료 그리고 불우한 이웃에게도 사랑의 손길을 베풀 수 있다면 정말 성경에서 가르치는 삶과 축복을 누리는 우리가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