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자라는 개

 

 

우리 집에서 기르는 개 몰라는 아주 유명하다.  내가 엮은 책에 주인공도 되고, 내 오토바이에 번호판 주인이기도 하며, TV 1년 동안 출연하기도 하였고 Google Street View에도 사진이 찍혔었다.  이러한 몰라 가장 유명하게 만든 것은 이름 몰라 그 이름에 걸 맞는 좀 떨어진 혹은 모자라는 그의 생김새와 하는 행동이다.  다른 개들과 같이 학교도 나왔건만 주인을 잘못 만난 탓인지 영 훈련이 불가능한 개로 낙인이 찍혔다.  그리고 시간과 장소를 별로 구분할 줄 몰라 어느 때고 노는 것과 먹는 것 외에는 특별한 이벤트가 없는 개이다.  이러한 개가 가끔 똑똑한 짓을 하면 몰라 대한 우리의 기준을 너무 낮게 잡은 탓인지 우리는 너무나 놀랍고 기이한 반응을 보이게 된다.

 

좋은 책을 읽다 보면 조물주의 아들이 상황을 설명할 때 나같이 좀 느린 사람도 이해하기 쉽게 비유로 많이 가르쳐주신다.  가르침 중에 돈에 대해서 예를 들어주시는데 어느 돈이 많지 않은 과부가 한 푼의 헌금을 했는데 이것을 지적하면서 칭찬을 해 주셨다.  가난한 과부의 한 푼이 부자의 높은 액수의 헌금보다 더 가치 있는 것이라는 가르침은 많은 사람들에게 쉽게 이해가 되었다.  하지만 이것을 수학적으로 따지자면 사실 조금은 다른 결론이 날 수도 있다.  퍼센트를 따지자면 당연히 과부의 헌금은 그녀의 100%였을 수도 있고 부자의 헌금은 10%는 고사하고 1%로 못 되는 부스러기 헌금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수학적으로 절대가치를 볼 때 과부의 1불과 부자의 1불은 차이가 전혀 없는 것이다.  즉 부자가 자신의 재산 중에 1% 10,000불은 과부의 전 재산보다 만 배나 많은 것이다.  후자의 계산법을 선호하신 어느 부흥강사는 우리 교회에서 목사님이 가장 중요한 돈 많은 부자 교인 몇몇만 잘 관리하면 교회 부흥에 전혀 문제가 없다고 설교하셨다.  돈 없는 사람들에게는 좀 치사하고 유치하게 들릴지라도 전혀 하자가 없는 이론이다.  그러나 모든 목사님들이 곁들여 말씀하시기는 그래도 과부의 100%를 하나님이 선호 하신 다고 설교하신다. 아마도 부자들에게도 궁극적으로 100%를 요구하는 첫 단계일지도 모르겠다.

 

이러한 예민한 헌금 이슈를 가지고 이야기 할 때 꼭 사용되는 구절이 있다.  돈 많은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가 커다란 낙타가 바늘구멍 들어가기보다 힘들다는 것이다.  생각을 해보라, 어떻게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들어갈 수 있나?  이러한 난해한 비유를 어떤 목사님들은 옛날 이스라엘의 문화며 당시에 사용하던 은어와 단어를 쪼개서 설명해 주신다.  즉 돈 많은 부자도 이리저리 인도해 주시는 대로만 살고 헌금을 많이 하면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사실 내 주위에 사업을 크게 운영하시는 분들 중에 너무나 멋있게 자신의 재산을 사용해서 하나님에게 영광을 확실히 돌리고, 주위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는 분들이 상당히 있다.  반면에 오히려 돈을 벌어보려는 과정에서 건강과 가정은 물론 자신의 믿음마저도 완전히 탕진해 버린 사람들도 보았다.  그리고 일단 돈이 왕창 벌린 사람들이 갑자기 목이 힘이 들어가서, 하나님에게 혹시 누구시더라? 하는 사람도 봤다.

 

성경지식이 많지 않은 초신자들이 오히려 교회 일과 전도에 열심인 것은 교회를 좀 다녀보신 분들은 아신다.  좀 겸손한 분은 이러한 열심 초신자들을 보면서 도전을 받고 회개하는 마음을 갖는다.  그러나 그저 그런 사람들은 기껏 나도 초신자 시절에는 좀 뛰었지 정도의 미비한 반응을 보인다.  이러한 상황을 헌금 이슈와 병행해서 비교해보자.  작은 믿음/성경지식의 초신자가 자신이 이해하는 하나님의 사명을 100% 감당하는 것과 장로/집사로서 엄청나게 크고 많은 믿음/성경지식을 바탕으로 커다란 사명에 1%만 실천할 때 과연 하나님은 어느 쪽을 선호하실까 생각해 본다.  사실 성경구절 몇 개만 실천에 옮기려 해도 벅찰 때가 너무나 많다.  이웃을 사랑하라, 원수도 사랑하라, 무조건 용서하라 이러한 가르침을 초신자들은 오히려 쉽게 받아드리고 전적으로 실천에 옮기려고 노력하는 최선의 삶을 산다.  반대로 교회를 몇 십 년씩 다니신 장로/집사들은 빤질빤질 닳고 닳아서 오히려 무조건이란 단어는 접어두고, 조건부 용서, 원수나 이웃은 고사하고 겨우 직계가족 정도나 사랑할 수 있는 최소의 삶을 산다.  과연 하나님이 보실 때 흡족한 삶이 될 수 있을까? 

 

돈을 안 벌어서, 혹은 못 벌어서 가난하게 사는 것이 상책은 아니다.  오히려 제대로 많이 왕창 벌어서 부자로 살면서 가르침대로 사는 것이 최선의 삶이다.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 같다는 말씀을 다른 관점에서 보면, 성경을 많이 배운 목사/장로/집사 (성경 지식의 부자)들이 천국에 들어가기 힘들다는 말씀이 아닐까?  때문에 제대로 배워서 기독교 세계관을 형성하고 본인이 겸손히 실천한 것을 남에게도 가르쳐서 주위에 선한 영향력을 마음껏 발휘하면 사는 것이 최선의 삶일 것이다.

 

나의 몰라는 좀 모자라는 개이기에 적당히 배워서 적당히 재주부리면 주인에게 사랑을 받는다.  우리도 쓸 때없이 많이 배워서 낭비할 것이 아니고 적도라고 확실히 배워서 실천에 옮기는 삶이 복된 것임을 인식해야 한다.  좋은 책에도 쓸데 없이 많이 배우는 것은 골치만 아프게 한다고 써있다.  그리고 성경을 가르치는 자들에게도 바로 가르쳐야 한다는 막중한 책임감이 있음을 상기시켜 주신다.  마찬가지로 재물도 쓸데 없이 많이 벌어서 혹은 버는 과정에서 해를 당하는 것보다는, 적당히 벌어서 적당히 사는 것이 진짜 복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빠져본다.  이렇게 말하는 나도 종종 돈을 왕창 벌어 봤으면 하는, 정말 모자라는 개 몰라만도 못한 주인임을 시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