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돗개의 귀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 이 문구를 생각하면서 우리 개 ‘몰라’ 유심히 쳐다 보았다. 귀가 옆으로 축 처져있으니 아주 측은하게 보인다.  가만히 누워 있다가도 무슨 소리가 나면 솔깃해서 귀가 옆으로 움직인다.  그러나 축 처져있는 귀는 벌떡 일어나지는 않는다.  개의 조상인 늑대들과 가장 거리가 가깝다는 진돗개를 보면 귀가 처져있지 않고 오히려 쫑긋하게 서있다. 당연히 잘 듣기 위해서인 것이다.  개의 종자가 사람들과 오랫동안 가까이 지내고 개종이 많이 된 종자 일수록 귀가 처져있다. 반대로 야생에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귀가 서있다.  이것은 개나 늑대들에게만 한정된 것이 아니고 멧돼지와 집에서 기르는 돼지의 차이에서도 확실하게 나타난다.

 

귀가 쫑긋하게 선 진돗개를 보면 자연스레 똑똑하고 자신감 있게 보인다. 어떤 면에서는 교만하게 보일 정도로 늠늠한 모습이다.  반면에 레바도인 ‘몰라’ 보면 귀가 축 쳐져 있다 보니 겁먹은 표정에다 좀 온순하고 항상 졸린 눈치이다.  그러나 개를 개종을 할 당시 표정보다는 기능이 우선이기에 다음과 같은 목적을 생각해 본다. 기능적으로 볼 때 요즘의 사냥개(Gun Dog)들은 옆에서 쏘아대는 총소리로부터 고막을 보호하기 위해서 축 처져있다.  반면에 총을 사용하지 않고 활을 사용하던 옛날의 사냥개나 요즘에도 총을 사용하지 않고 사냥감을 찾아내고 몰아 다니는 개는 청각이 필요하기에 귀가 쫑긋하게 서있다. .

 

사람의 귀는 필요에 따라서 안경을 걸 수 있고 또 연필과 담배 등을 꽂아 두는 다목적으로 사용된다.  그러나 사람이나 개들의 귀에 최고 목적은 단수히 들려오는 음파를 제대로 모아서 고막에까지 확대해서 듣는 것이다.  이 귀의 사용 목적이 요즘 어느 누구나 가지고 있는 휴대폰의 안테나와 같은 것이다.  안테나는 공중에 오가는 전파를 더 많이 정확히 잡기 위해서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부러진 안테나는 제 기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조금만이라도 외진 곳에 가게 되면 터지지를 않는 것이다.

 

이러한 원리를 우리 사업체와 영적 생활에도 적용 할 수 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귀, 혹은 안테나를 거추장스럽다고 접어두고 살 때가 얼마나 많은가? 혹은 필요 없는 곳에서 멋 부리려고 안테나를 쭉 뽑아 들고 다니다가 뜻하지 않게 부러뜨려 정작 필요 할 때도 펴지 못하고 사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성경에도 나오듯이 요즘에 공중에 오가는 소리(전파)가 상당히 많다. 다행히도 우리 사람들의 귀에는 그냥 들리지 않는 다른 주파수의 소리이기에 살 수 있다. 그리고 같은 우리 인간이 만들어 낸 주파수인 라디오, TV, 신문 그리고 월간지 등의 소리는 어차피 다 알아들을 수도 없고 다 들으면 귀가 아프기에 아예 귀를 접고 산다.  이런 식으로 살다 보니 자연히 우리의 귀가 꺾기게 된다. 하나님이 우리를 만들 때에는 항상 부르실 때마다 응답을 할 수 있게  들리게 만들었는데 이세상에 살다 보니 귀 먹이가 되던지 혹은 귀를 막고 사는 것이다. 이러한 생활도 하루 이틀이지 매일매일 되풀이하다 보니 아예 우리의 귀는 꺾어져 있다. 마찬가지로 영적 안테나도 꺾어져 있다.

 

성경에 써있기를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정말 이 세상에 귀 없는 자가 있으랴? 인간들이 귀는 다 있지만 귀가 접혀서 듣지 못하거나 안 듣는 자들과 귀가 쫑긋하게 서서 자세히 듣는 자들의 구분해서 말씀하시는 것이다.  당연히 귀가 제대로 기능을 발휘해서 듣고 따르는 자들은 좋은 결과가 있고, 들었지만 따르지 않는 자들은 나쁜 결과가 기다리고 있다.  그렇다면 듣기는 들었지만 무엇인지 잘 모르는 자들은?  혹은 이세상에 잡음 때문에 잘못 들은 자들은 어떻게 하나?  아니면 설사 들었다 해도 다른 나라 언어이기 때문에 아무리 노력을 해도 안될 때는 누구의 잘못인가?  나같이 평범하고 전문 사역자가 아닌 사람들은 사실 먹고 살기에 바빠서 조물주의 목소리와 바로 옆에서 외쳐대는 세상의 소리와 현금계산기에서 돈이 세어지는 소리와 함께 섞여서 혼동이 될 때가 많다.

 

사실 조물주는 여러 방법으로 우리에게 대화와 관계를 갔기 원하신다.  좋은 책이 기록된 당시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글을 읽을 수가 없었으므로 누군가가 읽어 주어야 했기에 귀 있는 자들은 들어서 배웠다.  그러나 문맹은 없어지고 시청각 교육이 발달 되어있는 오늘날에는 조물주가 우리에게 가르침을 주신다면 아마도 “눈 있는 자는 볼지어다” 혹은 “읽을 지어다”라고 말씀하실 것이다.  그리고 한 발짝 더 나가서 이-멜이나, 트위터 혹은  FB 하시기에 “인터넷 연결된 자는 클릭 할지어다”라고 하셨을 수도 있다.   어떤 방법을 택하시던 조물주는 우리와 아주 개인적인 대화를 나누고 우리 각자에게 가장 적합한 길로 인도하시기를 원하신다.  문제는 조물주는 항상 우리에게 크게 그리고 명확하게 전달을 하시지만 우리가 준비가 되어있지 않기에 못 듣고, 게을러서 안 읽고, 내가 싫기에 아직 인터넷과 iPhone App을 사용 안하고 있는 것이다.

 

아무리 ‘몰라’의 귀가 처져있어도 새벽에 내 방에서 아주 작은 움직임이라도 있으면 벌써 알아 차리고 놀자고 야단이다.  또한 아무리 뒤 뜰에서 뛰어 놀면서도 멀리 떨어져있는 앞마당에서 인기척이 나면 어떻게 알았는지 막 짖으면서 뛰어간다.  자신이 무엇인가는 들어야 하면 바짝 서지는 않지만 그래도 살짝 귀가 들춰지면서 소리가 들리게 방향을 조정한다.  이것을 보면서 다시 한번 회개하는 마음으로 실토한다.  결코 내 귀가 진돗개처럼 바짝 서지는 않았어도 결코 들리지 않는 것은 아니고 다만 내 마음 가짐이 문제다. 당연히 내가 문맹이 아니고 실리콘벨리에 살면서 컴맹도 아니기에 좋은 설교를 못 듣고, 좋은 글을 안 읽는 것도 아니고 당연히 수없이 많은 인터넷 설교를 찾지 못하는 것도 결코 아니다.  그저 내 마음에 조물주의 가르침을 듣고 싶지 않을 뿐이지 절대로 못 듣는 것은 아닌 것임을 새삼 뉘우친다.

 

내 마음의 귀가 진돗개처럼 쫑긋 세우고 듣던지, 레바도의 축 처진 귀를 가지고 듣던지 나의 마음이 주께로 향해져 있기에 나름대로 다 듣고, 읽고, 보고, 느끼며 따라가기로 작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