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장 안 강아지

 

 

집에 키우는 개 몰라는 집안에서 키워 보려 시도를 했지만 털도 많이 빠지고 덩치도 엄청나게 크고 또한 개에 대한 훈련을 제대로 시킬 자신이 없어서 그냥 밖에서 기르기로 했다.  그러나 아예 뛰쳐나가면 안되니까 집을 빙 둘러싼 담장을 잘 보수해서 절대로 못나가게 했다.  때문에 우리 몰라는 담장 안 강아지로 시작해서 지금은 담장 안 개가 되었다.  가끔 산책하기 위해 데리고 나가기도 하고 아이들이 친구들과 함께 개 전용 공원에 몇 번 데리고 간 것이 몰라에게는 유일한 바깥세상 경험이다.  나머지 시간은 담장 안에서 먹고/자고/놀고/싸고 모든 것이 다 해결 된다.  때문에 몰라는 다른 개들과 대면을 하게 되면 어쩔 줄을 모른다.  진짜 우물 안 개구리인 개이다.

 

우물 안 개구리는 우리 한국어와 한국문화에 아주 보편화 된 말 중에 하나다.  이 말의 배경은 설명 없이도 누구에게나 쉽게 이해가 되리라 믿는다.  이처럼 흔히 사용되는 우물 안의 개구리는 과연 누구를 지적해서 불려지는가?  이것을 생각하면서 우선은 내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한반도를 중학교 1학년 마치고 벗어났기에 나는 과연 우물에서 뛰쳐나오게 된 것인가?

 

중국인 중에 상항에 있는 중국타운에서 3세가 되어서야 처음으로 바깥구경을 나온 사람을 만난 적이 있다.  미국에 할아버지가 이민 와서 자신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한번도 상항을 벗어나 보지 못했고, 자신도 대학을 가기 위해 태어난 곳에서 직경 5마일을 처음 건넜다는 믿지 못할 말을 한다.  차를 타고 불과 10분이면 벗어날 거리를 평생, 그것도 3대에 걸쳐서, 살았다니 진짜 우물 안 개구리였다.  그리고 지난 10여 년간 사역지로 삼고 자주 방문하는 아리조나주 서남쪽에 위치한 왈라파이 인디언 보호구역이 있다.  태어나서 평생 그 곳을 벗어나지 못하고 문명의 혜택이 못 미치는 곳의 사람들을 여럿 본다.  이들은 살아가는 방식도 정부에서 억지로 만들어 놓은 자치령 정부의 일은 전문기술도 필요 없고 그냥 자리를 지키기만 하면 월급을 주니 다른 곳에 진출할 아무런 의욕도 없고 자신감도 없다 보니 묶여버린 것이다.  언제고 맘만 먹으면 외부인들은 엄청난 돈을 들여야만 할 수 있는 엘크 (말코 사슴)사냥도 이들은 거의 아무런 제한 없이 즐긴다.  그리고 미국 서부를 먹여 살리는 콜로라도 강가에 내려가서 낚싯대를 물에 잠그고 있으면 수도 없이 잡히는 농어(트라우트)를 먹지도 않고 과일나무 거름으로나 사용할 정도다.  이러한 환경에 익숙하다 보니 바깥세상은 관심도 없을 수 있다.

 

한반도에 남한, 상항의 중국인 타운 그리고 왈라파이 인디언 촌, 이 모두다 우물인 것이다. 그리고 이곳에 그냥 머물고 평생 살다 보면 우물 안 개구리가 되는 것이다.  이것들은 지역적 혹은 물질적 우물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정신적 혹은 신앙적 우물도 있을법하다.  지금 37년째 다니는 산호세 한인침례교회가 있다.  그리고 주위에 교회를 여러 번 옮겼지만 부족한 영어 때문인지 아니면 주일 점심 한끼라도 김치반찬이 있어야겠기에 한인교회를 떠나지 못하신 분들도 있다.  한 발짝 더 나가 목회를 하시는 목사님들도 꼭 한인들만 상대로 사역, 한인 목사님들만 상대로 교제 그리고 한국식 목회와 한국식 세계관을 고집하는 면을 본다.  미국에서 태어나서 한국말은 전혀 못하고 영어만 하는 우리 2세를 보아도 대부분 우물 안에 사는 느낌을 받는다.

 

사람이 한 우물만을 파라는 말이 있는데 왜 한곳에 머무르는 것이 비정상적인가?  다른 곳에 많이 안 가 봤다고, 즉 우물 안 개구리라고, 꼭 불리하고 모자라는 것인가?  절대 아니다.  내가 제일 좋아하고 존경하는 예수라는 분의 인생을 보면, 어렸을 때 부모님 따라 이집트에 이민 갔다고 온 것 외에는, 갈릴리와 예루살렘 등 지금의 이스라엘을 벗어나지 못한 우물 안 개구리였다. 그리고 그의 정신적 테두리도 아주 포커스가 좁은 단순한 삶이었다.  그러나 그의 영향력과 감화력은 중동은 물로 전 세계가 감당하지 못할 정도의 거인이였다.

 

글로벌시대에 사는 우리가 이제는 내 지역적 우물, 학문적 우물, 교회 우물, 교단 우물 등을 벗어날 때가 된 것 같다.  내가 사는 곳뿐이 아니고, 내가 아는 지식이 모두가 아니며, 내가 주장하는 방식이 절대가 아니라는 것이다.  몰라는 담 뒤에 있는 개가 하룻강아지이든 호랑이를 잡는 무서운 사냥개이든 상관없이 짖어댄다. 일단 담이 있기에 그 안에서는 왕이니까 뭣 모르고 짖어대는 것이다.  그런대 이러한 담이 무너졌다고 가정해보자, 당장 무서워서 도망을 올 개가 담장 안에서는 무섭게 짖어댄다.  교회에서도 부흥회나 제자훈련을 통해서 좀 배우게 되면 꼭 세상이 다 내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이것도 일단 교회 밖에 발을 내딛게 되면 담장 안 강아지 느낌이 강하게 와 닿는다.  이러한 상황을 피하려고 교회 밖에 나가서 사람도 못 만나고 평생 내내 비슷한 수준의 교회 다니시는 분들과만 어울린다.  그리고 일부는 세상과 겨루는 상대가 아니라 오히려 반대쪽에서 교회에 잠시 발을 담그고 있는 상황이다. 

 

좋은 책에 천국은 침노하는 자의 것이라 적혀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침노하는 자가 되었으면 한다.  담장 뒤에 숨어서 짖어대는 개보다는 담장이 전혀 필요 없을 정도로 주인과의 관계가 형성된 개로서 내 영역을 확실히 지키고, 언제든지 자유자제로 삶을 누리면서 온 세상이 내 것이라는 것을 기억하고 내 시야와 활동 반경 그리고 세계관도 우물 혹은 담장 안에 가두어 놓지 말고 즐겼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