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끄러운 개

 

우리 몰라는 참으로 눈치가 없는 개이다.  하루 종일 낮잠만 자다가도 집안에 인기척이 나면 무조건 자기에게 와서 문안을 드리고 잠시 동안이라도 놀다가 들어가야지 안 그러면 나올 때까지 정신 없이 짖어댄다.  심한 경우에는 집안에서 전화를 받지 못할 정도로 시끄럽게 짖어댄다.  가끔 집에 놀러오는 교회 분들이나 친구들도 몰라가 껑충껑충 뛰면서 짖어대면 무섭단다. 사실 아무리 개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자신의 개가 아니고 남의 개가 좀 크게 짖고 무섭게 굴면 옆에 가기를 꺼려한다.  다행히도 우리 몰라는 시끄럽게 짖어도 항상 웃는 얼굴이기에 큰 문제는 안 된다.

 

2차 세계대전 당시 폴랜드에 몰라와 비슷한 시끄럽게 항상 짖는 개가 있었다.  이 개의 주인은 아리나 센들러 (Irena Sendler - Sendlerowa) 여사였다.  아리나 여사는 자신의 개가 시끄럽게 짖는 것에 대해 별로 신경을 쓰지 않고 데리고 다녔다.  그 이유는 이 개가 예쁘거나, 똑똑해서가 아니고 꼭 필요해서였다.  그 개의 필요성은 장님의 길을 인도하는 것도 아니고, 주인을 보호하는 것도 아니고, 주인이 원하는 것을 주어오는 것도 아닌 그저 시끄럽게 짖는 것이었다.  그리고 때에 따라 좀 사납게 굴어서 다른 사람들에게 겁을 주는 것이었다.

 

1910년도에 태어난 아리나 여사는 독일 나치가 폴랜드 유태인들을 수용소에 모으기 시작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그들이 학살당하는 지경에 이르렀을 때 간호원, 배관공 등으로 변신해서 수용소를 들락거리며 자신의 연장박스 그리고 바구니 등에 유태인의 어린아이들을 몰래 숨겨서 빼내왔던 것이다.  그것도 몇 십 명이 아니고 2,500명이나 빼내오는데 뒤에 숨은 공로자()가 바로 정신 없이 짖어대는 개였다.  그녀가 갓난아이를 연장통 밑에 숨겨서 나올 때 아이가 우는 소리를 개 짖는 소리로 커버하면서 또한 독일 순찰병이 가까이 올 때 주인에게 알려주는 동시에 순찰병이 더 이상 접근을 못하게 하는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이었다.

 

이처럼 영웅적으로 위험을 무릅쓰고 좋은 일을 하던 아리나 여사는 전쟁 막바지에 독일 순찰병에게 잡히고 심한 고문을 겪어야 했다.  자신과 함께 유태인의 어린이들을 구원하던 사람들의 이름을 안 댄다고 두 다리가 다 부러지고, 팔도 부러질 정도로 심하게 맞으면서도 비밀을 지켰다.  그녀는 유태인 아이들을 빼돌리면서 그 아이들에 정확한 이름을 기록해서 유리병에 담아 뜰 나무 밑에다 묻어놨었다.  전쟁이 끝나면 이 아이들을 가족들에게 다시 돌려주기 위해서였다

 

이러한 아리나 여사의 영웅담은 거의 잊어져 가고 있었는데 1999년도 미국 켄사스에 고등학교 학생들이 Life in a Jar (병에 담긴 생명) 이라는 연극을 통해서 세상에 다시 알려졌다.  정작 전쟁이 끝났을 때는 대부분의 유태인 부모들은 학살당했고 가족들을 찾을 수 없었기에 입양시키거나 이스라엘로 보내졌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 분은 노벨 평화상 후보자로 2007년도 올랐으나 정치인에게 밀려서 수상하지 못하고 다음해인 2008년도에 98세의 나이로 폐염으로 폴랜드에서 돌아가셨다.

 

다시 개로 돌아가자.  개가 주인의 마음을 알아서 필요할 때 짖은 것일까 아니면 어차피 짖어대는 개니까 주인인 아리나 여사가 데리고 다닌 것일까?  아마도 후자 일 것이다. 다른 개들이 우리 몰라보다 월등히 똑똑하다 하여도 주인이 원하는 정확한 시간에 짖어대는 개는 거의 없을 것이다.  그저 개들은 짖는 것이 당연한 것이고 특히 모르는 사람, 독일 순찰병이 왔을 때 크게 짖는 대는 것이 아마도 숨쉬는 것과 같이 자연스러웠을 것이다.  이것을 가지고 철학적으로 프랑스의 실존주의자 사르트르가 제시한 것처럼 존재하기에 임무가 부여된 것인가? 아니면 목적이 있기에 존재하는 것인가?  억지처럼 들릴 위험을 감수하고 나는 주장한다. 이 개가 만들어진 것은 목적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즉 개가 짖어대는 것이 당연하고 자연스럽기에 아리나 여사가 유태인 갓난아이들을 몰래 숨겨나올 때 울음 소리도 뒤덮고 또한 순찰병들이 가까이 오는 것을 꺼리게 만들었다. 

 

그렇다면 교회나 사회에서 정신 없이 떠드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대부분 경우 왕따를 당한다.  이들이 쓸데 없이 떠드는 것인가 아니면 이들 나름대로 조물주가 주신 사명과 임무를 감당하기 위하여 각자의 타고난 재질과 성품대로 주어진 자신의 역할을 하는 것인가?  항상 시끄러운 사람들이 떠들 때에 대부분 사람들은 신경을 끈다.  그리고 거의 무시 한다.  그런데 그들이 떠들어 대는 배경과 이유를 곰곰이 되새겨 생각을 해보면 아주 틀린 것이 아닌 경우가 많다. 사회에서나 공동체에서나 항상 찬밥 취급 받는 이분들이 떠드는 내용이 어떤 때에는 내가 하고픈 말이지만 내 체면 때문에 혹은 내 위치 때문에 말 못하고 있는 것을 속 시원하게 대변해 줄 때가 있다.  그리고 어떤 때에는 진짜로 들어서 도움되지 않는 탁상공론 혹은 음모보다는 시글벅쩍 떠들어대는 시끄러운 소리가 오히려 더 유익할 때가 있는 것이다.

 

주책없이 아무 때나 장소와 상황도 안 가리고 떠드는 것은 좀 삼가 해야 될 것이나, 반면에 조물주가 만들기를 좀 외형적인 사람도 있다.  다른 사람들을 대변하기 위해서 조물주께서 만들었을 가능성을 아리나 여사의 시끄러운 개를 통해서 생각해 본다.